신체화 — 은희경, 《새의 선물》

"말하지 못한 감정이 몸에 새겨지는 방식"

by 응시

1. 장면

진희는 열두 살이다. 여섯 살에 어머니가 죽었다. 전쟁통에 실성한 어머니였다. 한국전쟁이 한 여자의 정신을 부수고, 부서진 정신은 대인기피와 우울 속에 가라앉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여섯 살 진희를 마루 기둥에 묶어두고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목을 매었다.


아이는 묶여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이것이 진희의 몸에 새겨진 최초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그 뒤 사라졌다. 전쟁의 상처를 감당하지 못한 채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살림을 차렸다. 다른 아내, 13살 어린 여동생. 어머니는 죽음으로 떠났고, 아버지는 선택으로 떠났다.


1969년 전북 고창. 감나무집. 우물을 중심으로 두 채의 살림집과 가게채가 이어져 있다. 외할머니와 이모 영옥과 서울대 법대생 삼촌과 함께 사는 진희는, 이 작은 세계를 관찰한다. 험담을 좋아하는 장군이 엄마, 허세와 가정폭력의 광진테라 아저씨, 구박받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광진테라 아줌마, 양장점 시다로 일하며 신분 상승을 꿈꾸는 미스 리 언니. 감나무집의 여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프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은 강진희라는 소녀가 38세가 되어 열두 살 시절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진희는 놀라울 만큼 조숙하다. 이모의 연애를 읽고, 어른들의 허위를 꿰뚫고, 비밀을 알아차린다. 자기가 알고 있는 비밀로 상대방을 얽어매고 관찰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진희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고통이다.


프롤로그에서 38세의 진희가 쓴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2. 명명

신체화. 심리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연구에서 처음 발견했다. 초기 환자 안나 O는 팔의 마비를 호소했고, 그 마비의 원인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면서 팔이 저렸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몸의 증상이 마음의 기억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신체화는 감정이 언어를 찾지 못할 때 일어난다. 슬프다고 말할 수 있으면 울면 된다. 화가 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소리치면 된다. 그러나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때, 감정은 언어 대신 몸을 통로로 삼는다.


신체화된 증상은 거짓이 아니다. 꾀병이 아니다. 몸은 진짜로 아프다. 다만 아픔의 원인이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을 뿐이다.


3. 독해

왜 신체화였을까


진희의 몸에는 최초의 기억이 있다. 마루 기둥에 묶여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섯 살 아이는 이 경험을 말로 처리할 수 없다.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자살했다"는 문장은 38세의 진희가 만들 수 있는 문장이지, 여섯 살의 진희가 만들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여섯 살에 남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감각이다. 밧줄의 조임. 움직일 수 없는 몸. 기다리는 시간. 오지 않는 사람.


이 감각이 신체화의 씨앗이다.

이 경험 앞에서 다른 방어기제들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1편의 억압은 해당되지 않는다. 진희는 기억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기억하고 관찰한다. 기억이 너무 선명하다.


14편의 해리와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하다. 피콜라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복적인 폭력을 당했다. 진희도 도망칠 수 없었다 — 물리적으로 묶여 있었으니까. 그러나 해리의 조건 중 하나인 반복이 충족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한 번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다. 반복이 아니라 영구적 상실. 해리가 아니라 상실 이후의 방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7편의 부정도 해당되지 않는다. 진희에게는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있다. 이모의 사랑, 광진테라 아줌마의 고통, 장군이 엄마의 외로움. 감정의 회로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은 정밀하게 읽으면서, 자기감정만 읽지 못한다. 부정이 아니라 선택적 차단이다.


표면에서 작동하는 것은 주지화다. 진희는 느끼는 대신 관찰한다. 9편의 토니오 크뢰거가 한스를 분석하느라 사랑하지 못했듯, 진희는 세계를 관찰하느라 자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주지화가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마루 기둥에 묶여 있던 감각. 어머니가 오지 않는 시간. 버려졌다는 감각. 이것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몸의 경험이다. 여섯 살의 감각은 열두 살의 언어로도 닿지 않는다.


여기서 주지화와 신체화가 분리된다. 진희의 마음은 두 층으로 작동한다. 표면에서는 주지화가 작동한다. 세계를 관찰하고, 어른들의 허위를 꿰뚫고, 비밀을 알아차린다. 그 아래에서는 신체화가 작동한다. 주지화가 닿지 못하는 것 — 묶여 있던 몸의 기억,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선택 — 이 언어를 찾지 못하고 몸에 남는다.


두 개의 빈자리

진희에게 부모는 없다.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여섯 살 아이는 알 수 없다. 있는 것은 두 개의 빈자리뿐이다. 설명 없는 부재. 이유 없는 사라짐.


이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깊이 몸에 새겨진다. 이유가 있으면 이유를 붙잡을 수 있다. 이유가 없으면 붙잡을 것이 없다. 붙잡을 것이 없는 아이는 자기 자신을 붙잡는다. "내가 부족해서 버려졌다." 설명할 수 없는 부재 앞에서 아이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다.

이 설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이 되지 않는 설명을 언어로 반박할 수 있는 여섯 살은 없다. 반박할 수 없는 것은 몸에 남는다.


두 층의 작동

은희경의 문체 자체가 이 이중 구조를 반영한다. 감정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신체 감각을 서술한다. 인물이 슬플 때 "슬펐다"가 아니라 몸의 반응을 쓴다. 9편에서 토마스 만이 주지화를 소설 구조로 수행했듯, 은희경은 신체화를 문체로 수행한다. 감정 단어가 없는 문장. 감각 단어만 있는 문장.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진희의 말이 두 층의 증거다. 성장이 멈췄다는 것은 감정의 회로가 닫혔다는 것이다. 몸은 자라지만 마음은 열두 살에 멈춰 있다. 자라는 몸과 멈춘 마음 사이의 간극이 신체화의 공간이 된다.


소설 마지막에서 아버지가 돌아온다. 새엄마와 13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선택한 가족이 눈앞에 있다. 그리고 진희는 이 소설의 끝에서 내면의 성숙과 함께 신체의 성숙을 경험한다. 몸이 변하는 것이다. 멈춰 있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이것은 신체화의 해소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세 여자, 세 가지 전쟁의 상처

1편의 박완서 화자, 12편의 오정희 화자, 그리고 진희. 세 사람 모두 전쟁이 만든 인물이다. 박완서의 화자는 전쟁을 직접 겪었다. 목격자였다. 기억이 너무 커서 밀어내야 했다. 억압.


오정희의 화자는 전쟁 직후를 살았다. 어른들이 남긴 혼란 속에서 세계를 정리하려 했다. 취소.


진희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어머니를 부수고, 부서진 어머니가 자살하고, 아버지가 떠나고, 그 부재가 진희의 몸에 도착했다. 신체화.


전쟁의 상처가 세대를 넘어 전달될 때, 방어기제의 형태가 바뀐다. 직접 겪은 사람은 기억을 밀어낸다. 목격한 사람은 세계를 되돌리려 한다. 물려받은 사람은 몸에 새긴다. 멀어질수록 말이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4. 돌아봄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픈 사람이 있다. 불안하면 어깨가 굳는 사람이 있다. 슬픈 일이 있으면 두통이 오는 사람이 있다. 이것을 "스트레스성"이라고 부르며 넘기기 쉽다.


그러나 몸이 말하고 있는 것을 한 번쯤 들어볼 수 있다. 이 통증이 시작된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피로가 몸의 피로인지 마음의 피로인지,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을 때 오히려 안도가 아니라 허탈했다면 — 몸이 마음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체화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방어기제 중 가장 조용한 것이다. 14편의 해리처럼 인격이 나뉘지도, 11편의 격리처럼 음식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만성적 피로, 원인 불명의 통증, 자주 체하는 위장, 잠들지 못하는 밤. 일상에 스며든 채 조용히 말하는 몸. 조용하기 때문에 가장 오래 발견되지 않고, 가장 오래 지속된다.

몸의 언어는 마음의 언어보다 오래된 것이다. 말을 배우기 전의 아이가 울고, 몸을 비틀고, 안기려 하는 것은 감정의 최초 언어가 몸이기 때문이다. 마루 기둥에 묶여 있던 여섯 살의 진희에게 말은 없었다. 있었던 것은 밧줄의 조임과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몸뿐이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은 이 오래된 언어로 돌아간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신체화하는 캐릭터의 핵심은 이중 구조에 있다. 표면에서는 다른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그 아래에서 신체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 진희처럼 밖으로는 예리하고, 안으로는 아픈 사람. 타인의 고통은 정확히 읽으면서 자기 고통은 몸에 맡기는 사람.


신체화의 조건은 자기감정의 언어가 없는 것이다. 진희의 경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시간 없이 관찰자가 되어야 했다. 아이가 아이일 수 없었던 환경. 이 배경을 설계하면, 인물의 몸이 말하는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신체화의 원점에는 몸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 진희에게는 마루 기둥에 묶여 있던 기억이 있다. 이 최초의 몸의 기억이 이후의 모든 신체화를 조직한다. 캐릭터에게 신체화를 부여할 때, 그 인물의 몸에 새겨진 최초의 감각이 무엇인지를 설계하면, 신체화에 구체성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