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 최인훈, 《광장》

"천국과 지옥으로 나눈 세계에 살 곳은 없다"

by 응시

1. 장면

이명준은 남한에서 살 수 없다고 느낀다. 아버지는 월북했고, 자신은 감시를 받고, 남한의 현실은 부패하고 공허하다.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나라. 그래서 북으로 간다. 광장이 있는 나라로.


북한에 도착한 이명준이 발견한 것은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나라다. 개인의 내면은 허락되지 않고, 모든 것이 집단의 논리 안에서만 존재한다. 남한이 전적으로 나빴다면, 북한은 전적으로 좋아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 교환의 순간이 온다. 남으로 갈 것인가, 북으로 갈 것인가. 이명준은 제3국을 선택한다. 그리고 인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다.


2. 명명

분열. 클라인이 정교화한 이 기제는 대상을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가르는 것이다. 회색이 없다. 중간이 없다. 좋은 것은 완전히 좋고, 나쁜 것은 완전히 나쁘다.


분열은 아기의 최초 방어기제다.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배를 채워주는 엄마는 전적으로 좋은 대상이고, 채워주지 않는 엄마는 전적으로 나쁜 대상이다. 같은 엄마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성숙한다는 것은 이 둘이 같은 대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좋으면서 나쁜,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한 대상. 이것을 클라인은 우울적 위치로의 진입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통합이 실패하면, 세계는 계속 둘로 갈라진 채 남는다.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교대로 반복된다.


3. 독해

왜 분열이었을까. 이명준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체제의 폭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갈등이다. 남한의 부패, 아버지의 월북, 감시받는 일상. 이 상황에서 다른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 있었을까.


억압할 수 있었을까. 남한의 부패를 의식에서 밀어내고 적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산다. 그러나 이명준은 지식인이다.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이 억압을 방해한다. 현실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밀어낼 수가 없다.

합리화할 수 있었을까. "남한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어디든 완벽한 곳은 없다"는 식으로. 그러나 합리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두고 해석만 바꾸는 것이다. 이명준의 고통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밀실의 부패와 자유의 부재는 해석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반동형성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남한에 대한 혐오를 반대로 뒤집어 과잉 애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준은 감정을 뒤집을 만큼 유연하지 않다. 그의 성격은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느끼는 것을 반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분열이 선택된 이유는, 이명준이 처한 상황 자체가 이분법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밀실과 광장. 한반도의 현실이 이미 둘로 갈라져 있다. 이명준의 분열은 순수하게 개인적 심리 기제가 아니라, 분단이라는 외부 현실이 내면에 각인된 것이다.


여기서 분열의 중요한 특성이 드러난다. 분열은 대상을 둘로 가르지만, 그 이분법이 외부 현실에 의해 지지될 때 특히 강력해진다. 이명준이 남한을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었던 것은, 남한이 실제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이 이분법을 뒷받침해 주면, 분열은 정당한 판단처럼 보인다. 이것이 분열의 함정이다.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순환이 이어진다. 남한이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순간, 북한이 전적으로 좋은 것으로 이상화된다. 그러나 북한에 도착하면 이상화는 깨지고, 북한 역시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뒤집힌다. 이 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통합이 필요하다. 좋으면서 나쁜, 완벽하지 않지만 살 수는 있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이명준에게 이 통합은 일어나지 않는다.


광장과 밀실이라는 비유 자체가 분열의 언어다. 광장 아니면 밀실. 이 이분법 안에서 이명준은 통합을 상상하지 못한다. 광장이면서 밀실인 곳은 이명준의 심리적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은혜라는 여인이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혜와의 관계는 이념이 아닌 사적 친밀감의 영역이다. 이명준이 유일하게 분열 없이 만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은혜는 죽는다. 전쟁이 은혜를 죽인다. 분열된 세계가 통합의 가능성을 먼저 파괴한다.


제3 국 선택은 분열의 논리적 귀결이다. 남한도 안 되고 북한도 안 되면, 어디로 가는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곳. 그러나 제3 국은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분열된 세계에서 '제3의 공간'은 분열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분열의 연장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귀결이다.


그래서 이명준은 바다에 몸을 던진다. 바다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유일한 공간이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살 수 없다. 분열이 통합으로 가지 못할 때, 남는 것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죽음뿐이다.


4. 돌아봄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완벽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이 직장이야말로. 이 관계야말로. 그리고 어느 순간 결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 완벽했던 대상이 하루아침에 최악이 되는 경험.


그것은 대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이상화가 평가절하로 뒤집힌 것이다. 분열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 대상은 처음부터 완벽하지도, 나중에 최악이 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함께 가진 대상이었다.


이명준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나은 나라가 아니라, 불완전한 나라에서 사는 법이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살 수는 있는 곳. 그런 곳은 밖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통합될 때 비로소 보인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분열하는 캐릭터는 드라마에서 가장 극적인 궤적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둘 수 있다. 이상화에서 평가절하로의 급반전이 서사의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누군가를 완벽하다고 믿다가 환멸하는 순간 — 그 순간이 서사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리고 분열이 작동하려면 외부 환경이 이분법을 지지해야 한다. 분단, 전쟁, 계급, 종교적 이원론. 세계가 둘로 갈라져 있을 때, 인물의 분열은 개인적 병리가 아니라 시대적 필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