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몸을 분리하면 남는 것"
1. 장면
영혜는 어느 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피가 흐르는 꿈. 그 선언은 조용하지만 절대적이다. 남편이 화를 내고, 시아버지가 억지로 고기를 입에 넣고, 가족 전체가 동원되어도 영혜는 먹지 않는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남편의 시선, 형부의 시선, 언니의 시선. 영혜 자신의 내면은 거의 서술되지 않는다. 독자는 영혜를 바깥에서만 본다. 이 서술 전략이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이 장면을 대부분의 독자는 저항으로 읽는다. 가부장제에 대한 거부, 폭력에 대한 거부. 그 독법은 유효하다. 그러나 영혜의 표정을 다시 보자. 거기에 분노가 없다. 슬픔도 없다. 고통도 없다. 억지로 고기를 입에 밀어 넣는 시아버지의 폭력 앞에서도, 영혜의 얼굴에서 읽히는 것은 감정의 부재다.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다. 분노든, 비통함이든, 결의든. 영혜에게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저항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다.
2. 명명
격리. 프로이트가 말한 이 기제는 사건과 감정의 분리다. 경험은 기억하되, 그 경험에 수반되었던 감정을 떼어내는 것이다. 수술을 받은 사람이 수술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면서도 아무런 감정 없이 말하는 것, 학대 경험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전하는 것이 격리다.
격리는 억압과 다르다. 억압은 기억 자체를 밀어내지만, 격리는 기억을 남겨두고 감정만 분리한다. 사실은 있되 감정은 없다. 이 분리 때문에 격리된 사람은 종종 매우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인다. 실은 냉정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회로가 끊어진 것인데.
격리가 극단으로 가면 해리에 가까워진다. 몸에서 마음이 분리되는 것. 자기 몸을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것.
3. 독해
왜 격리였을까. 영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이다. 소설은 이것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암시한다. 꿈속의 피, 폭력의 기억, 몸에 새겨진 공포. 앞선 열 편의 방어기제가 왜 작동하지 못했는지를 검토해 보자.
1편의 억압은 이미 작동했을 수 있다. 결혼하고 평범한 아내로 살아온 시간 동안, 아버지의 폭력은 의식 아래 눌려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묘사하는 결혼 전의 영혜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다. 이 평범함 자체가 억압의 결과였을 수 있다. 그러나 꿈이 그 억압을 깨뜨린다. 피가 흐르는 꿈. 억압된 것의 회귀. 프로이트가 말했듯,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꿈은 억압의 벽을 넘어 의식으로 침투하는 경로다. 억압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른 방어기제가 필요해진다.
5편의 반동형성도 이미 작동했을 수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공포를 반대로 뒤집어, 과잉 순종과 과잉 평범함을 표면에 형성한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아내는 반동형성의 산물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꿈이 이것도 무너뜨린다. 억압과 반동형성이 동시에 무너진 자리에서, 영혜에게 남은 방어기제는 무엇인가.
2편의 투사가 작동하려면 감정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남편이나 시아버지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영혜에게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투사할 것이 없다. 7편의 부정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뫼르소는 감정의 회로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영혜의 경우, 회로가 열려 있다가 끊어진 것이다. 한때 감정이 있었지만, 그 감정이 분리된 것이다.
3편의 합리화가 작동하려면 행동에 논리를 붙일 필요가 있어야 한다.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해 논리적 설명을 하지 않는다. "꿈을 꾸었다"는 것이 전부다. 합리화하는 사람은 라스콜니코프처럼 정교한 이유를 제시한다. 영혜에게 그런 논리의 언어가 없다.
9편의 주지화가 작동하려면 감정을 사유로 전환할 지적 습관이 있어야 한다. 토니오 크뢰거처럼 감정을 분석의 재료로 만드는 것. 영혜는 분석하지 않는다. 사유하지 않는다. 영혜에게 있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몸의 거부다. 지적 전환이 아니라 신체적 반응이다.
격리가 선택된 이유는, 영혜의 고통이 몸에 새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격리의 고유한 조건이다. 아버지의 폭력은 언어 이전에, 논리 이전에, 몸에 기록된 경험이다. 몸에 새겨진 고통을 처리하려면, 다른 방어기제들이 사용하는 도구 — 언어, 논리, 방향 전환 — 가 작동하지 않는다. 언어를 사용하는 방어기제들(합리화, 주지화, 반동형성)은 모두 감정에 이름이 붙어 있어야 작동한다. 몸에 새겨진 고통에는 이름이 없다. 4편의 퇴행도 이름 없는 고통에 작동하지만, 퇴행은 자기를 축소하는 것이다. 영혜는 축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부한다. 음식을, 몸을, 인간의 형태를.
몸의 고통에 대해 마음이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어는, 몸과 감정의 연결을 끊는 것이다. 격리다. 사건은 기억하되 감정을 떼어내는 것. 몸에서 일어난 일은 알지만, 그것에 수반되는 공포와 고통을 분리하는 것. 이 분리가 일어나면 사건은 사실로만 남고, 감정은 어딘가로 사라진다.
영혜의 채식은 이 격리의 표현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점점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마침내 자기 몸이 식물이 되기를 원한다. 이 과정은 격리의 심화다. 감정과 사건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해, 감정과 몸을 분리하고, 마침내 인간의 몸 자체를 벗으려 한다. 식물에게는 감정이 없다. 식물에게는 기억이 없다. 영혜가 원하는 것은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격리를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14편에서 다룰 해리와의 경계가 여기서 보인다. 격리는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고, 해리는 의식을 분리하는 것이다. 영혜의 과정은 격리에서 시작해 해리를 향해 가는 궤적이다. 감정을 떼어냈는데도 몸의 감각이 남아 있으니, 다음 단계로 의식 자체를 몸에서 분리하려 한다. 식물이 되겠다는 것은 의식과 몸의 완전한 분리를 꿈꾸는 것이다.
한강이 영혜의 내면을 서술하지 않은 것이 이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격리된 사람의 내면에는 접근할 수 없다. 감정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내면을 서술하면 감정이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한강은 영혜의 내면을 비워둠으로써 격리의 상태를 형식으로 구현한다. 9편에서 토마스 만이 토니오의 주지화를 소설 구조로 수행했듯, 한강은 영혜의 격리를 서술 구조로 수행한다.
그러나 한강은 격리의 완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영혜는 식물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몸 안에 갇혀 있다. 격리는 완성될 수 없다. 감정을 아무리 분리해도, 몸이 있는 한 감정은 돌아온다. 분리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아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음식 거부, 몸의 변형 시도, 점점 사라져 가는 육체. 15편에서 다룰 신체화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감정이 언어를 찾지 못할 때 몸이 대신 말한다. 영혜의 몸이 거부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감정 자체다.
4. 돌아봄
가끔 자기 몸이 자기 것 같지 않은 순간이 있다. 큰 충격 이후 세상이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느낌. 슬퍼야 할 상황에서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자신. 아픈 기억을 말하면서 마치 뉴스를 읽듯 건조한 목소리.
그것은 강함이 아니라 격리일 수 있다. 마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의 선을 끊어놓은 것일 수 있다. 7편의 부정과 구별해야 한다. 부정은 감정의 회로가 처음부터 열리지 않은 것이고, 격리는 회로가 열려 있다가 끊어진 것이다. 부정하는 사람은 자기가 괜찮다고 믿는다. 격리된 사람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괜찮지 않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격리하는 캐릭터의 핵심은 내면의 공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있다. 한강이 영혜의 내면을 서술하지 않은 것처럼, 격리된 인물의 내면을 직접 묘사하면 격리의 구조가 무너진다. 대신 주변 인물의 시선으로, 몸의 증상으로, 행위의 변화로 보여주어야 한다.
격리의 조건을 앞선 편들 과 비교하면 이렇다. 고통이 몸에 새겨진 경우 — 언어 이전에, 논리 이전에, 몸으로 겪은 폭력이나 공포 — 에 격리가 작동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방어기제(합리화, 주지화)는 감정에 이름이 있어야 작동하고,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어기제(투사, 전치)는 감정이 존재해야 작동한다. 격리는 감정 자체를 끊어내는 것이므로, 감정이 존재한 뒤에 작동하되, 감정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격리된 인물에게 이전의 방어기제가 흔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영혜의 "지극히 평범한" 결혼 생활이 반동형성의 흔적이었듯. 격리 이전에 어떤 방어기제가 작동했다가 무너졌는지를 설계하면, 격리에 이르는 과정에 심리적 필연성이 생긴다. 억압하고, 반동형성하고, 그래도 안 되어서 감정 자체를 끊어내는 것. 이 궤적을 보여줄 수 있으면, 격리하는 캐릭터에 역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