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보내지 않은 편지들
에밀리 디킨슨은 1,800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그중 살아 있는 동안 발표한 것은 열 편 남짓이다.
나머지는 서랍 속에 있었다. 작은 종이 묶음 — 디킨슨은 이것을 직접 실로 꿰매어 소책자로 만들었다 — 에 빽빽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동생이 발견했다. 1,800편. 서랍 하나에 들어 있던 한 생애의 고백.
디킨슨은 매사추세츠 앰허스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거기서 죽었다. 서른 살 이후로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방문객을 만나지 않았다. 하얀 옷만 입었다. 2층 방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시를 썼다.
은둔이라고 불렸다. 세상이 두려웠을 거라고 사람들은 짐작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도. 그러나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 이 여자가 세상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을 너무 정확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디킨슨의 시에는 죽음, 고통, 신, 사랑, 광기가 있다. 그런데 이 주제들이 관념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몸으로 다루어진다. 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 빛이 비스듬히 내려오는 각도. 뇌 안에서 장례식이 열리는 감각. 추상적인 것을 감각으로 번역하는 능력 — 이것이 디킨슨의 유일무이한 재능이다.
그리고 이 재능은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발표를 전제로 쓰면, 독자를 의식한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가, 독자가 좋아할 것인가, 이 표현이 적절한가. 이 의식이 문장을 다듬기도 하지만, 동시에 길들인다. 디킨슨에게는 그 의식이 없었다. 서랍에 넣을 글이었으므로.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이었으므로. 그래서 문장이 길들여지지 않았다. 문법이 깨져 있고, 대시가 난무하고, 단어의 사용이 기이하다. 아무도 이렇게 쓰지 않는 방식으로 썼다. 읽힐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디킨슨의 시는 100년이 지나도 살아 있다. 독자를 위해 쓴 글은 그 독자와 함께 늙는다. 자기를 위해 쓴 글은 늙지 않는다.
보내지 않은 편지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보낸 편지는 상대에게 닿는 순간 상대의 것이 된다. 보내지 않은 편지는 영원히 쓴 사람의 것으로 남는다. 디킨슨의 1,800편은 보내지 않은 편지들이었다. 세상에게, 신에게, 죽음에게, 사랑했지만 말하지 못한 사람에게 — 보내지 않은 편지.
그래서 디킨슨은 이런 사람에게 닿는다. 쓰고는 있지만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 서랍에 넣어두고 있는 사람. "이걸 누가 읽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쓰는 사람. 디킨슨이 증명한 것은, 보내지 않아도 글은 글이라는 것이다. 읽히지 않아도 문학은 문학이라는 것이다.
1,800편의 서랍 속 시는 결국 세상에 나왔다. 쓴 사람이 죽은 뒤에. 디킨슨은 그것을 의도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가장 순수한 글쓰기는 어쩌면 읽힐 것을 기대하지 않는 글쓰기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지 않을 종이 위에, 아무도 듣지 않을 문장을, 그래도 쓰는 것. 그것이 1,800번의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