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아빠 손은 이상하다.
연필통처럼 생겼다.
내가 고르기 전에
이미 손바닥을 쫙 펴 놓고 기다린다.
“이건 어때?” 하고 물어보면
아빠는 항상 똑같이 말한다.
“그거 좋아 보이네.”
사실 아빠는
색연필이 뭐가 다른 지도 잘 모른다.
빨강이 다 빨강인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딸기 빨강,
이건 토마토 빨강,
이건 기분 좋은 빨강이라는 걸.
아빠는 내가 색연필을 고를 때마다
괜히 더 웃는다.
내가 뭘 그릴지 궁금한 게 아니라
내가 고르는 얼굴이 재밌나 보다.
가끔 아빠가 묻는다.
“이건 뭐 그리는 거야?”
나는 아직 안 정했는데
아빠는 꼭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그래도 괜찮다.
아빠 손은 계속 거기 있고,
나는 그 위에서
마음껏 고른다.
오늘 그림은 기억 안 날 수도 있지만
아빠 손이 연필통이던 날은
아마 오래 기억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