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써있는데 다시 써오랍니다

임원이 바보는 아니다.

by 한끗작가


오늘도 보고서를 썼다.

평가제도를 리뉴얼한 방향을 설명해야 했고,

그 안에 담긴 보상의 맥락도 전해야 했다.


“직원들은 연봉인상액이 적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회사는 매년 인건비 상승이 가파르고 부담된다”고 말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보상 총액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나눴는가였다.


하지만 내 보고서를 끝까지 읽기도 전에

임원이 먼저 물었다.


“이러면 인건비 부담만 늘어나는 것 아닌가요?”


내가 쓴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방향이 틀어졌다.


그건 ‘내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순서’의 문제였다.





요즘은 누구나 보고서를 잘 쓴다.

문장은 매끄럽고, 구조도 논리적이며,

틀린 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오히려 보고서가 잘 쓰인 시대이기 때문에

더 많은 보고서가 피로하게 느껴진다.

잘 썼는데 왜 납득이 안 되는 걸까?




같은 데이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총보상의 변화는 사실상 크지 않다.

제도 변경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효과는

추정치 기준 0.5%에 불과하고,

구조적으로는 기존 재분배 방식을 일부 수정한 수준이다.


실제 고성과자 인상액과 저성과자 인상액 간의 차이는

예년보다 더 뚜렷해졌고,

성과주의 관점에서 보면 개선된 결과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보고서는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는 우려를 낳고,

어떤 보고서는 “성과 배분이 정교해졌다”는 반응을 끌어낸다.


정보는 같다.

그런데 반응은 다르다.


왜냐하면

보고서가 강조한 순서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부터 꺼냈느냐,

어떤 맥락으로 연결했느냐,

누가 들을 것인지를 고려했느냐에 따라

같은 말이 다르게 들린다.


보고서는 이제,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았는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건 이제 AI가 더 잘한다.


이제는 ‘이 말을 왜 지금 꺼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 말이 그 말이지.”

“같은 얘긴데 왜 다르게 받아들이는 거야?”


회의 끝나고 나면,

“우리 임원이 멍청해서 그래”라는 푸념이 오갈 때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특정 분야에 무지할 수는 있어도

진짜 ‘멍청한 임원’은 많지 않다.


그럴 땐 되묻는 게 필요하다.


내가 하려던 말이,

정말 그 보고서에 잘 담겨 있었을까?


정보는 많았지만,

그 흐름이 설계되지 않았다면

오해는 설계자의 책임일 수도 있다.




유추하게 만드는 보고서는 피로하다.

행간에 의미를 숨기지 말고,

순서로 보여주는 글이 설계된 글이다.


설계란, 정보를 담는 일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설계자의 판단은 배열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AI는 문장을 만들지만,

설계자는 납득을 만든다.


이게 바로, 한 끗 설계다.




사실 이렇게 설계를 잘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람이 AI라는 무기까지 장착한 시대다.


격차는 더 벌어질 거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설계력’이라는 감각을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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