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는 AI를 어떻게 쓰는가

기법을 넘어서 타이밍과 맥락을 더하는 사람

by 한끗작가


1. 기계가 할 수 있는 일, 기계에게 시켜라


우리는 이제 아주 쉽게 요구한다.

“요약해줘.”

“5가지로 정리해줘.”

“이 내용을 이메일로 써줘.”

ChatGPT는 그걸 해낸다.

게다가 생각보다 잘 해낸다.

때로는 ‘내가 쓰는 것보다 나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만든 글을 그대로 쓰면

정보는 풍부한데, 이해가 안 된다.

메시지는 정확한데, 설득이 되지 않는다.


왜일까?


설계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계가 만든 문장을 다시 읽는다.

지금 이 말, 이 타이밍에 나와도 괜찮은가?

이 순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보는 사람이 반응할 수 있을까?


기계는 ‘쓸 수 있는 문장’을 만들고,

설계자는 ‘움직이게 만드는 문장’을 만든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게 시키되,

지금 여기서, 이 순간에 맞는 말인지 판단하는 건

설계자의 영역이다.





2. 기법은 시작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기법’을 검색한다.

ACTS, MECE, FAB, AIDA, PAS…

이름만 들어도 뭔가 있어 보이고,

실제로 기법대로 쓰면 꽤 괜찮은 글이 나온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글’이

‘기억에 남는 글’은 아니다.

‘논리적인 글’이

‘설득력 있는 글’이 되지는 않는다.


기법은 구조를 줄 수 있다.

하지만 타이밍은 줄 수 없다.

기법은 형식을 안내하지만,

맥락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는 AIDA 기법을 활용해 AI에게 일을 시켰다.

Attention - Interest - Desire - Action.

광고문구는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조금 아쉽다.


순서가 맞는데도 감정이 안 움직이는 이유.

정보는 있는데 납득이 안 되는 이유.

기법이 ‘무엇을’ 말하느냐를 알려준다면,

설계자는 ‘왜 지금’ 말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기법은 시작이다.

그걸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그게 설계자의 차이이고, 글의 품격을 나누는 기준이다.




3. 설계자의 질문: “지금 이게 필요한가?”


AI는 ‘많은 걸’ 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너무 많은 걸 줄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예시도 다 들어 있고,

정리도 잘 돼 있다.


하지만 설계자는 ‘지금 필요한 것만’ 남긴다.

지금 이 사람이 궁금한 건 뭘까?

내가 전달하고 싶은 건 이 데이터일까, 이 분위기일까?

이 말을 지금 하는 게 맞을까, 나중에 꺼내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으면

AI가 만들어준 완벽한 문장도

그저 배경 소음처럼 스쳐 지나간다.


설계자는 이 흐름을 바꾼다.

정보가 아니라, ‘이해의 순간’을 연출하는 사람.

감정을 설계하고, 타이밍을 조율하고,

결국엔 독자의 머릿속에

“아, 이 말이 필요했구나”라는 감각을 남기는 사람이다.


AI는 대답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건 사람이다.

질문이 깊어질수록,

AI가 내놓는 대답도 깊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걸

판단하고, 조율하고, 멈추는 사람이 설계자다.




4. 설계자의 몫: 더 높은 것을 요구하고, 멈출 줄 아는 것


설계자는 ‘그 정도면 됐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사람이다.


AI가 준 문장을 그대로 쓰지 않고,

이 문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열 번은 더 되묻는 사람.

같은 말을 다섯 번 바꿔 쓰며

리듬과 감도를 조절하는 사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 이상 다듬지 않아도 될 타이밍을 아는 사람.

완벽을 바라다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딱 여기까지, 하고 멈출 줄 아는 사람.


이끌어내는 것.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고 멈추는 것.

그 모두가 설계자의 역할이다.




5. AI와 함께 일한다는 것


설계자는 AI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AI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정보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정보가 가진 온도와 톤을 감지하고,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맥락을 정리한다.


때로는 AI가 써준 걸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쓴다.

때로는 두 개의 답변을 섞고,

때로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보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판단—이끌어내는 것,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감각—

그게 바로 설계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AI를 통해 무엇을 ‘설계할 수 있느냐’다.


기계는 훌륭한 조수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건

언제나, 설계자의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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