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에 크림 한 겹
“이거 뭐예요? 이상한 거 시키셨네요?”
처음에는 그냥 웃었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
혼자 에스프레소에 크림을 얹으면
꼭 한 마디씩 따라온다.
‘쎄 보인다’, ‘느낌 있다’, ‘그런 거 좋아하세요?’
딱히 감성 부릴 생각은 없었고,
그냥 그게 나한테 맞았다.
작고, 진하고, 길게 끌지 않는 맛.
그 위에 얇게 덮인 크림은
누가 보면 멋 부린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 정도의 부드러움이 없으면
꽤 버겁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취향을 드러내는 걸 싫어한다.
불필요한 설명을 유발하고, 그 설명이 반복되면
결국 ‘이해받지 못함’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대부분은 말없이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커피도, 말투도, 보고서도
비슷한 온도에 맞춰 살아간다.
나는 그게 늘 어려웠다.
어색하고, 무던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반대로 확 부러뜨릴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고른 게
에스프레소에 크림 한 겹.
회사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사실 대놓고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어딘가 너무 단단하거나,
괜히 다른 걸 고르는 사람에겐
약간의 경계가 있다는 걸.
“쎄 보인다”는 말 안에
“너 좀 피곤할 것 같아”가 들어 있고,
“독특하다”는 말 안에
“우리는 그 정도까진 안 해”가 숨어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조용히 나와 커피를 산다.
그리고 다시 그 진하고 뜨거운 걸
한 모금 마신다.
크림은 금세 사라진다.
겉은 부드럽지만 안엔 쓴맛이 그대로 남는다.
그게 나다.
겉으론 아무 일 없는 척,
내 취향대로 고른 커피처럼 굴지만,
사실은 이걸 마셔야 오늘도 버틸 수 있다.
아메리카노처럼 길게 눌러앉을 여유도 없고,
더 이상 나를 묽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내 방식대로 버티고 있다.
그게 보기엔 조금 센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회생활 초반엔
그런 선택들이 ‘세 보인다’, ‘독특하다’는 말로 돌아왔다.
그때는 그게 싫어서,
조금씩 덜 말하고, 덜 드러내고,
어떨 땐 일부러 무난한 척도 했다.
그렇게 타협하고, 조금은 둥글어졌고,
예전보단 훨씬 노련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커피만큼은 포기하지 못하겠다.
에스프레소에 크림 한 겹.
회사에서 감춘 나의 거의 모든 것 중
유일하게 끝까지 남겨둔 취향.
그건 아직도
내가 나로 있겠다는 마지막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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