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단상|'노무현 고백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 고백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 1994). 오랜만에 들춰봤다. 표지(표1)를 펼치면 대개 날개(표2)에 저자의 이력 등 소개 글이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저자 노무현의 사진 아래 본문 내용의 일부를 게재했다. 이 글에는 저자가 변호사라는 것 말고 별다른 이력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 소개란에 담긴 내용은 뜻밖에도 '변호사 노무현의 흑역사'였다. 다들 뽐내고 뻐기며 자랑을 늘어놓는 곳에 부끄럽고 창피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 사연은 노변이 30대 초반이었던 1970년대 후반의 일인 듯 하다. 1988년 국회에 첫 발을 디딘 그는 1992년 선거에서 떨어졌다. 이 책이 출간된 게 1994년이니 그의 나이 40대 후반,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였다. 이 책을 다시한번 정독해야겠다.
"변호사 개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남편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며 내게 변호를 의뢰해 왔다. 나는 그 사건을 60만원에 수임했는데, 사실 당사자 간에 합의만 되면 변론도 필요 없는 사건이었다.
당연히 변호사로선 사건을 맡기 전에 합의를 해보라고 권유했어야만 옳았다. 그러나 마침 변호사 사무실에 돈이 딱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었던 때라 그 아주머니가 나타나자 사건을 덩렁 맡아 버렸던 것이다.
사건을 맡자마자 사무장은 나더러 얼른 피의자인 그 아주머니의 남편을 접견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그건 사무장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피의자를 접견도 하기 전에 합의를 봐 버리면, 그 아주머니가 변호사 선임을 취소하고 해약을 요구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고 접견을 하면 계약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서둘러 접견을 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접견한 다음 날 그 아주머니가 찾아와 합의를 봤다며 해약을 요구했다. 난 일단 사건에 착수하면 수임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변호사 수임 약정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못 돌려준다고 버텼다. 속으로는 미안하고 얼굴도 화끈거렸지만, 당시 사정이 급해 받은 돈을 이미 써 버린 후였다.
그 아주머니는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서 먹고 삽니까?" 하는 그 말 한 마디를 내 가슴 속에 던져 놓고는.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려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지금쯤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그 아주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의 영욕과 진심을 담보로 하여 따뜻한 용서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