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단상|김종필(JP) 전 총재 3주기
2003년 <오마이뉴스> 정치팀장 시절, 당시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날짜가 공교롭게도 6월 25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몸풀기용 첫 질문으로 6·25 전쟁 이야기를 꺼낸 게 실수였다. JP는 그 한 질문을 갖고 기억을 회상하며 30분 가까이 답변을 이어나갔다. 중간에 끊기도 무척 애매하게. 그는 달변이기도 했고, 다변이기도 했다.
정치적인 성향과 이념적인 지향점이 크게 다르다고 해도 JP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를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그의 매력에는 동감한다. 그리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비상한 기억력과 박학다식, 예술에 대한 조예, 품위있는 유머의 소유자라는 걸 알게 된다.
당시 자민련을 출입했던 기자, 내 대학 동기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날 JP가 출입기자들과 식사를 하다가 문득 '임자들, 첫 눈이 오면 한번 다시 모이자'고 했단다. 다들 그러자고는 했지만 잊고 지냈다. 그 해 첫 눈이 내린 날, 자민련 공보실 관계자가 출입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첫 눈이 내리니 JP가 출입기자들과 보자며 연락을 돌리라고 했다고.
JP와 인터뷰를 마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JP쪽에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JP와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들은 인사동의 한 한정식 집에서 세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JP는 폭탄주를 7, 8잔 정도 마셨는데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다 기억나진 않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JP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당시 분위기는 잊혀지지 않는다.
아래 문답은 2003년 인터뷰에서 JP에게 던졌던 일문일답의 일부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면 맨 아래 기사 URL을 클릭하면 된다.
한국 현대사와 정치에 큰 명암을 남긴 '영원한 2인자' JP의 안식을 빈다.
- 우리 정치나 사회에서 진정한 보수주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보수는 5000년을 살아온 조국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개혁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그런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 그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굳건히 간직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발자취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을 섭취해서 내 것으로 소화하면서 세상 진흥과 더불어 발전하자는 것이 보수다.
어제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내일이 있을 턱이 없다. 어제를 욕하는 사람은 부모를 욕하는 것이다. 어제와 공존해야 한다. 무조건이 아니라 가려가면서…. 이것이야말로 건전한 진보주의다. 엥겔스나 마르크스가 얘기하는 것이 진보가 아니다. 모택동도 문화혁명을 해서 다 절단났다.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등소평이 오늘날 중국을 만들지 않았나."
- 흔히 'JP는 영원한 2인자'라고 말하는데,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인 김종필'은 어떤 사람인가.
"(사람들이 나를 '영원한 2인자'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선두에 서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늘 뒤에서 선두에 선 사람 도왔다. 그러면서 선두에 선 사람 못지 않게 보람을 느껴왔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데 '티샷'보다 '세컨드 샷'이 잘 나간다고 '골프도 2인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하하). 지금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 젊은 네티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0대 후반에 한참 공부할 때 지금도 머리에 남은 것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2000년 전에 '요즘 젊은이들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 여자들 궁둥이나 따라 다니고, 술이나 먹고, 공부 안하고, 유흥에 빠진 저런 경박한 젊은이들이 우리의 후예라고 한다면 나라 장래가 걱정스럽지 않느냐'고 한탄을 했다. 예전 사람들은 모두 그런 '기우'를 했다. 그렇게 걱정했지만 2000년 뒤 어김없이 더 발전된 세상을 만든 것은 그런 후예들 아니었나.
편파적으로 어떤 일을 하거나 생각하지 말아라. 사상도 마찬가지다. 교육받는 이유는 선택을 올바로 하기 위해 받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다. 선택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그 일생이 결정된다. 선택을 잘 하려면 건전한 상식과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절대 세상 일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봐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도 이뤄지는 것이 없다. 그리고 고전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또 소년시절에는 과격할 정도로 운동을 해라. 건강은 젊은 시절에 단련해 놓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