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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Sep 12. 2021

조정래 작가가 말하는 <태백산맥> 창작 뒷이야기

인터뷰 뒷얘기|소설가 조정래

2010년 11월 조정래 선생과의 인터뷰.


아주 오래 전이다. <허수아비춤> 출간을 계기로 소설가 조정래 선생 인터뷰를 했다. 당시 기사에는 자세하게 쓰지 않았던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태백산맥> 1만6500매, <아리랑> 2만매, <한강> 1만5000매, 지금까지 쓴 작품은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약 8만매. 자신을 글감옥에 가두고 매일 원고지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인고의 글쓰기다. <태백산맥> 때는 하루 평균 30매 정도였는데, <허수아비춤>은 25매로 약간 줄었다는 것. 그래도 애초 15매 정도로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체력 안배가 잘된 셈이다. 머리로 구상하고, 발로 취재하고, 몸으로 쓰는 '조정래식 글쓰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1]

조정래 선생이 펴낸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책 제목처럼 그는 장편소설을 쓸 때 스스로 '글감옥'에 갇힌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세상과 단절한 채 자기 스스로 정한 '일일 원고량'를 채워나간다. <토지>의 작가 고(故) 박경리 선생도 경작과 글쓰기가 일상이었다고 들었다. <임꺽정>을 그린 이두호 선생도 직장인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에 맞춰 출·퇴근 하면서 작업실에서 만화를 그렸다.


[#2]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3부작에 등장하는 인물이 800~1000명 가량 된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놀랐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단 한 명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 더 놀란 건, '인물 관계도(족보)'를 그려놓지 않고 기억하면서 글을 썼다는 것.


장편소설은 등장인물이 많고 관계가 복잡해 대개의 작가들은 연표처럼 '인물 관계도'를 그려놓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자칫 이름이나 관계를 헷갈리면 '족보'가 꼬이는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정래 선생은 10권 분량의 대하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의 관계를 머릿속에 입력해두고 글을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그걸 체험을 안 해서 그러는데…. 컴퓨터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우리 뇌를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우리 뇌는 집중을 하면 상상할 수 없는 복합 효과가 일어납니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두뇌 구조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겠어요? 거기다가 집중을 하니까, 구성 노트가 없어도 가능합니다. 세세한 장면까지.


벤허보다 긴 영화가 한순간에 쫙 펼쳐지는 느낌이 와요. 어떤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면 자료를 읽으면서 벌써 머릿속에 구조가 그려져요. 그리고 현지에 찾아가면 그곳 지형지물을 보면서 저곳에다는 무슨 사건을 어떻게 엮어야겠구나 하는 게 떠올라요."


[#3]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태백산맥> 육필원고가 있다. 쌓아놓은 원고 높이가 사람 키를 넘는다. 그곳에 조정래 선생 아들과 며느리가 필사한 <태백산맥> 원고도 전시돼 있단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 필사를 시킨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죽으면 저작권료를 사후 70년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런 혜택을 받는데, <태백산맥>과 같은 소설을 창작하진 못하더라도, 그 소설을 원고지에 옮겨 쓰는 성의는 보여야 <태백산맥> 저작권료를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아들과 며느리 가운데 누가 먼저 필사를 마쳤느냐고 묻자 웃으며 '며느리가 빨랐다'고 답했다.)"


#조정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허수아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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