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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Jan 28. 2024

몸, 망각, 두상, 몸통에 천착하는 여수의 박치호 화백

100가지 단상|박치호 화백 "내 작품은 공공의 것"


#0

여수의 박치호 화백은 김정운 교수를 통해 처음 뵈었다. 자존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 교수가 여수에서는 누군가의 '똘마니'를 자처했다. "고 기자, 나는 여수에서 다른 사람은 안 만나. 박치호 화백만 만나고, 박 화백이 만나라는 사람만 만나고, 박 화백이 사라는 것만 사고, 하라는 대로만 해." 박치호가 누구길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재열 영화감독)


#1

인연이 인연을 낳는다. 사람이 사람을 잇는다. <도시X리브랜딩> 출간 후 저자 초청 특강을 만들어준 시인 임호상 형님. '내려온 김에 한 이틀 쉬었다 가라'며 돌산 별장을 선뜻 내어줬다. 이튿날에는 '화양면에 바람 쐬러 가자'며 '박 작가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굳이 '박 작가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여수라는 공간은 그냥 '화양면이냐, 돌산이냐' 둘만 구분할 줄 알면 된다고 했다. 박 작가는 화양면에 작업실을 둔 박치호 화백이었다. 임호상 시인과 박치호 화백은 여수 토박이 '갑장 친구'다. 임 시인은 보성에서 태어났지만 아주 어릴 때 여수로 왔고, 박 화백은 섬 출신이다. 이찌보면 두 사람 모두 시작점이 여수의 변방인 셈이다.


#2

화양면 어느 곳에 있는 박치호 화백의 작업 공간(화실)은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이미 완성된 그림의 캔버스, 작업 중인 캔버스, 화백의 간택을 기다리는 캔버스가 창고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지 곳곳에 묻은 물감을 보니 흡사 페인트공 같았다. 일행들이 보물찾기하듯 창고 곳곳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동안 박 화백은 차와 커피를 내왔다.


얼굴과 팔·다리 없이 몸통만 담은 그림과 토르소, 눈·코·입이 뭉개진 두상 그림이 박 화백의 작품과 의식 세계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두상과 몸통으로 외화된 그의 작품 바탕에는 몸과 망각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몸과 망각, 두상과 몸통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3

"기교가 뛰어난 화가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저는 기교가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몸으로 작품 활동을 합니다." 머리나 재주가 아니라 몸을 놀리며 쏟아부은 노동의 시간만큼 작품의 진전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20·30대 때 천착했던 얼굴 없는 두상 그림을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그대로 하고 있단다. 다만, 자신의 그림에 담긴 의미를 조금 더 자각하게 됐다고.


"시장통 할머니의 몸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연과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며 그린 몸통은 묘한 여운을 길게 남긴다.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현실적인 몸에서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고단한 작업을 그는 자신의 숙명 같은 그림 세계라고 여기는 듯 했다.


#4

박 화백은 여간해서는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고 쌓아두고 있다. 다만, 도립미술관처럼 공공 미술관에 한해서는 일부 작품을 판다. 그림 값을 시세보다 절반가량밖에 못 받는데도, 그는 왜 그런 원칙을 세웠을까? 


"제가 그린 그림이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제 것은 아닙니다. 개인 소장용으로 팔면 돈을 더 받을 수 있겠지만,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저보다 더 잘 보존해줄 수 있는 '공공의 소유'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공공 미술관에서 제 그림을 많이 갖고 있게 되면, 제 작품 세계에 대한 연구도 더 활발해지니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5

내로라 하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뇌물'로 쓰였다는 걸 알고 실망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경우도 있고, 누가봐도 모작인데 사실을 바로 잡으면 생겨날 엄청난 소용돌이를 우려해 자신의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단다. 그래서 박 작가는 나중에 '모아둔 작품'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고 사회 소유로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란다. 자칫 자신의 작품들이 후손에게 '짐 아니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FLOATING(부유)'이라는 화두에도 관심이 많은 박치호 화백. 다음에 만나면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여수를 떠나기 전, 저녁 술자리에서 박치호 화백을 한번 더 볼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었다. 행운 같은 인연을 만들어준 임호상 형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


#박치호화백 #임호상시인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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