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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Jul 03. 2020

대전|'해장 끝판왕' 국내산 올갱이로 차린 집밥

이한기의 음식이야기 - 올갱이 전문점, 대전 <내집>


이태 전쯤 대전 장전에 글쓰기를 가르치러 내려갔다. 그때 만난 인연으로 나중에 금강 메기구이집을 간 적이 있다. <바다황제> 대표인 신환수 형님이 아끼고 아껴둔 명소였다. 그때 장어구이보다 맛있는 게 메기구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당시 동행했던 멤버 가운데 한 분이 올갱이 전문점 <내집> 대표인 정경임 누님이었다. 메기구이를 맛있게 먹고 배를 꺼뜨릴 겸 들렀던 강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누님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올갱이를 잡았다.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누님도 눈 앞의 올갱이를 보고는 그냥 못 지나쳤다.


또 오랜 시간이 흘렀고, (2019년 11월) 지난주 토요일 처음으로 <내집>에서 올갱이국으로 해장 겸 점심식사를 했다. 제육볶음과 두루치기, 여러 전도 있지만 이 집의 메인은 올갱이 요리다. 올갱이국, 올갱이비빔밥, 올갱이무침, 올갱이전 등.


표준말은 '다슬기(marsh snail)'인데, 지역별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경상도는 '고디', 전라도는 '대사리', 충청도는 '올갱이'라고 부른단다. 경기도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다슬기를 '소라'라고 불렀다. 이처럼 지역별로 명칭이 각양각색이다.


올갱이가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라고는 하지만, '다슬기 해장국'이라고 안 부르고 '올갱이 해장국'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음식에서는 올갱이가 표준인 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장 음식은 '올갱이 아욱국'이다. 광화문 유림식당에서 내던 음식인데, 이 식당이 사라진 뒤 한때 멘붕이 왔을 정도다.



옛 문헌에 기록된 '다슬기(올갱이)'의 효능은 이렇단다.


● 동의보감(東醫寶鑑)|간질환 치료와 숙취 해소, 시력 보호 등 건강을 개선시킨다. 위장 기능과 빈형 증세를 개선하고, 골다공증에 도움을 준다. 무지방, 고단백질 건강식으로 체질 개선과 다이어트에 좋다.


● 본초강목(本草綱目)|열을 내리게 하고 이뇨 작용을 촉진시키며, 우울증에 도움을 준다. 독소를 배설시키고, 부종을 없애주며 간 기능 회복과 황달을 제거한다. 뼈를 튼튼히 하고, 혈액을 맑게 하며, 신장 및 담낭 결석을 예방한다.


한 마디로 술을 좋아하고 시력이 나쁜 내게는 보약같은 음식이란 뜻이다.


<내집>에서는 국내산 올갱이만을 취급한다. 섬진강, 금강 등 다양한 곳에서 채취한 올갱이를 받아 해감한 뒤 삶고, 옷핀으로 일일히 하나하나 속살을 빼낸다. 식당 문을 열기 전, 손님이 뜸할 때는 부업으로 인형에 눈알 붙이듯 다같이 모여앉아 올갱이 속살을 빼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중국산은 가격이 싸고 속살을 빼낸 걸로 살 수 있지만, 흙냄새가 나고 맛의 차이가 커서 <내집>에서는 국내산만 고집한다. 이게 <내집> 올갱이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다.


전날 술을 마시고 점심이 첫 끼니라는 걸 알고, 정경임 누님이 올갱이국은 물론 올갱이무침과 백두부로 한 상을 차려주셨다. 마치 엄마와 누이가 있는 시골의 내집에서, 객지에서 오랜만에 온 아들이나 동생에게 차려주는 상차림이었다.


김에 싸 먹는 올갱이무침은 처음 먹어봤는데, 이 맛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됐는지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가, 올갱이를 저렇게 야산처럼 쌓을 정도면 일일히 속살을 빼내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찡하고 미안했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올갱이는 식재료를 준비하는데 노력과 시간이 꽤 많이 든다.


한 시간쯤 지나자, 봉사활동을 다녀온 <삼형제쭈꾸미> 오재웅 대표와 신환수 형님이 내집처럼 <내집>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환수 형님이 부엌에서 가져온 생고구마를 깎아서 건넨다. 배는 만땅이지만, 후식이라고 생각하고 먹다보니 다 뱃속으로 들어간다.


내 배를 채운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끈끈한 정이었다. 내 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2019_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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