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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Aug 08. 2023

여행이 전해준 선물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


어머니의 품이라고 불리는 전라남도 장흥은 탐진강이 흐르는 물의 도시이다. 해마다 장흥에서는 시내를 관통하는 탐진강 일원에서 물을 주제로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장흥은 오래전부터 열 차례도 넘게 업무차 출장을 다녀온 곳이다. 눈에 익은 푸르른 산세를 보면 고향을 찾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매미 울음도 잦아드는 한여름에 장흥은 쉴 곳이 많다. 우드랜드가 있는 억불산 편백숲과 천관산 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이름난 휴식처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으로 선을 그어 내려온 언덕에 설치된 정남진전망대에서 보는 일출과 바다가 열리면 건너갈 수 있는 남포마을 앞바다의 소등섬을 두르는 일몰은 기억에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다.


이번 장흥 여행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곳 가지산의 품에 안긴 천년 사찰 보림사를 찾기로 했다. 내가 이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국보 117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보러 가기 위해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점의 철불을 보고 고풍스럽고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 생각한 것이 있었다. 사찰에 존치되고 있는 철불을 볼 수 있다면 더욱 그 시대의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그런 철불을 만나러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나에게 미뤄두었던 기회가 찾아왔다. 철불은 통일신라말과 고려초기에 주로 만들어졌다. 보림사의 철불은 팔꿈치에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어 학술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보림사는 장흥 북부에 있어 서울로 가는 길에 들르는 곳으로 정해 놓았다. 탐진강을 거슬러  올라 탐진호의 오른쪽을 따라가면 “구산선문종찰보림사(九山禪門宗刹迦智山寶林寺)”라고 적혀있는 보림사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에서 사찰까지는 700m가 넘는 거리다.


절 앞에 도착하니 외호문으로 들어가는 길과 일명 “보림사 티로드”라 이름 지어진 녹차밭으로 이르는 길이 있다. 이 고장은 전통차의 일종인 청태전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외호문을 지나 사천왕상에 이르렀다. 목조로 된 사천왕상은 1515년에 지었는데 나무로 만든 것 중에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목조 사천왕상 중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보림사 사천왕상에서 1995년 팔과 다리 부분에서 월인석보 제17권 등 국보급 희귀본을 비롯하여 발견된 책들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이 주둔한 곳이라고 하여 외호문과 사천왕문만 남겨두고 모든 전각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사천왕상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것 같은 역사를 담고 있었다.


사천왕문을 나오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다. 1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외형이 완벽하게 보존된 삼층석탑과 석등은 국보 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탑 양옆으로 당간지주가 있는데 세월에 깎이고 마모된 흔적이 예스러움을 더한다.


석탑 뒤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보인다. 솜털 구름만 떠 있는 한여름의 한낮, 널찍한 대적광전의 안과 밖에는 아무도 없다. 지금 생각하니 경내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나뿐이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 이는 여러 전각에 모셔진 석가모니와 보살뿐인 것 같다. 


화엄전 또는 비로전이라 불리는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봉안하는 전각이다. 대적광전의 옆문을 통하여 철불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85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로 철로 만들어진 불상 앞에 섰다. 2.51미터의 높이의 비로자나불은 근엄함 자태로 지권인 자세의 수인을 하고 있다. 지권인은 왼쪽 검지손가락을 오른쪽 손으로 감싸는 동작인데 이치와 지혜, 중생과 부처, 혼돈과 깨달음이 모두 하나라는 뜻이라고 한다. 깊은 수행을 하는 듯한 표정과 검붉은 철제 불상이 주는 엄숙함이 내 들뜬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운다. 철불의 무던하고 엄숙한 자태에서 부처님의 온화한 자비가 발아래 낮은 곳으로 퍼져 나오는 듯하다. 


대웅전 앞의 작은 전각 명부전은 본존불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이 소속된 시왕(十王)을 모신 곳이다. 지옥으로 온 자의 혀를 뽑는 염라대왕은 지옥의 열 명(?)의 왕 중 다섯 번째다. 지붕의 최상단 용마루 위에 용 두 마리가 지옥의 하늘을 지키는 모습이다. 


미타전에는 특별한 석불입상이 존치되어 있다. 장흥의 제암산 중턱의 의상암지에 있었던 곳에서 가져와 1975년 장흥교도소에 정문에 설치되었던 것을 1994년 보림사로 옮긴 것이다. 하얀 석조에 입술만 붉게 칠해진 불상이 무언가를 말씀해 줄 것 같다. 의상암은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암자다. 미타전 석불입상이 더욱 신비스러운 불상으로 느껴진다.


미타전 옆으로는 각각 보물로 지정된 보조선사탑비와 보조선사탑이 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나무 그늘 터널이 놓여있고 정비되지 않아서 더욱 산사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 보조선사탑에는 암자였던 보림사를 다시 창건한 보조선사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바닥돌부터 지붕까지 모두 팔각으로 되어있고 탑 중앙부에는 사천왕상이 부조로 새겨있다. 언덕으로 500m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승탑인 동부도와 서부도 또한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산속의 작은 절에 국보와 보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김제의 금산사처럼 이곳도 보물 천지다. 


마당 한가운데 물기가 마르지 않은 곳이 있다. 자세히 보니 탐진강의 발원지라도 된 듯 물이 마당 중앙에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늘 한점 없는 마당에 작은 우렁이 200마리가 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마당 한가운데에 물속에서 사는 생물이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서울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말하면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경내 마당 중앙에 작은 숲이 있다. 숲속에는 지붕이 덮인 작은 연못이 있다. 가장 시원한 곳이다. 연못 안에는 물고기와 다슬기가 산다. 이곳이 다름 아닌 약수터다. 다른 약수터처럼 물이 흘러나오는 관이 없다. 아래로 흐르는 물은 시냇물 같기도 해서 얼굴과 팔도 씻었다. 상류의 물을 바가지로 물을 떠 1L는 마신 것 같다. 물을 마시고 물속을 들여다보니 돌 위로 다슬기가 지나간 자국이 선명하다. 10Cm가 넘는 크기의 물고기도 한 마리 보인다. 마셔도 되는 물이겠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한국자연보호협회에서 이 연못의 물을 명수로 지정했다고 한다. 건강해질 것 같다. 


외호문을 나서는 발걸음에 더위가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서울로 향하는 길에 경건한 마음으로 철불을 감상하고 산사의 한적한 정취를 느끼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예상치 못한 많은 유산을 챙기어 간다. 한여름 무더위에 먼 곳까지 찾아왔다고 장흥은 나에게 보림사의 기억을 한가득 선물로 안겨주었다.


사찰에서 700M 떨어진 일주문의 뒷면에는 “평삼심시도선차일미(平常心是道禪茶一味)”라고 적혀있다. 이곳의 특산물 청태전 한잔 마시러 찻집에 들러야겠다. 아직 더 받아야 할 선물이 남은 모양이다.   



        

---보림사의 국보와 보물---     

국보 제44호 3층 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55호·156 동부도(동승탑), 서부도(서승탑)

보물 제157·158호 보조선사 창성탑(彰聖塔) 및 창성탑비

보물 제1254호 목조사천왕상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과 석등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미타전 여래입상
천년약수터 전경과 연못처럼 생긴 보림천년약수
미타전 쌍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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