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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Oct 04. 2023

고전동화 속 풍경 왕곡마을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 

고성의 오봉산 아래에 숨겨진 마을이 있다. 한옥마을도 아니고 민속마을도 아닌 고려 말부터 자연취락으로 주민들이 살아온 마을이다.


1392년 7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이성계에게 폐위되어 강원도 원주로 유배된다. 같은 해 8월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간성으로 쫓겨난다. 이때 함부열이라는 고려 충신이 공양왕을 따르다 고성에 숨어 지내는데 그의 둘째 아들 함영근이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산골에 터를 잡게 된다. 그로부터 그 마을은 양근 함 씨의 집성촌이 되어 22대를 넘겨 살고 있다. 그 마을이 바로 180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이다. 기와집과 초가집 60여 채가 마을을 이루는 왕곡마을을 찾았다.


왕곡마을 입구 길 건너에는 동학사적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894년 동학혁명 총동원령 당시 양양과 거진까지 동학군이 궐기하였다. 1889년 천도교 제2대 교주 최시형이 왕곡마을 김함도 의 집에 숨어 지냈고, 1894년 동학혁명 총동원령 당시에는 동학군 10여 명이 함일순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1953년에는 이 마을이 세 차례의 함포사격을 받았는데 떨어진 모든 포탄의 뇌관이 꺾이어 터지지 않아 마을이 온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한 1996년과 2000년 두 차례 큰 산불이 났을 때도 마을 뒷산에서 불길이 잦아들어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포성과 화마도 길을 잃었던 마을, 폐위된 왕의 세력이 머물고 동학군이 숨어 지내던 오지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항아리가 놓여있다. 장승은 많이 보아왔던 것인데 뒤에 모여앉은 항아리는 생소하다. 마을로 들어서자 언덕에 효자각이 있다. 양근 함 씨의 4대에 걸친 다섯 명의 효자를 공덕을 기린 비석인데 부모가 돌아가실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연명의 구실을 실행하여 효를 행했다고 한다. 비록 현대의 시선으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이지만 단지주혈을 행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도 극진한 효로 부모님을 모셨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3년간 시묘살이까지 행했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가니 기와집과 초가집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고전 동화에 나오는 마을의 느낌이다. 초가집과 기와집의 차이는 지붕의 차이만 있을 뿐 기둥이나 벽은 같은 구조이다. 초가지붕은 일 년에 한 번 추위가 오기 전에 새것으로 교체된다.


대문이 있는 집은 찾아볼 수 없다. 울타리가 없이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이다. 거센 바람과 추위에 견뎌야 하는 북방식 가옥으로 부엌과 방과 창고가 모두 붙어있는 “ㄱ”자 형태의 집이다. 추위 때문에 부엌에 외양간을 만들어 가축들을 키우는 구조인데 지금은 가축을 기르는 집은 없는 것 같다.


집마다 굴뚝에 항아리가 매달려 있다. 마을 입구에 장승과 함께 있던 항아리가 특별한 구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으로 불길이 솟을 수 있는데 항아리로 바람이 머물게 하여 불꽃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다. 집벽에는 겨울에 쓸 장작이 가득히 싸여있다. 지금도 아궁이로 불을 때는 집이 많다. 각각의 집은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석문집, 한고개집, 큰상나말집, 큰 백촌집, 작은백촌집 등 주인의 출신지를 딴 이름을 내걸었다. 큰백촌집과 작은백촌집의 주인은 형제지간이다.


마을의 가운데로 왕곡천 맑은 물이 지나간다. 물이 맑고 시원해 하루 종일 놀다가 갈 수 있을 것 같다. 물소리를 들으며 냇가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가을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까실까실 밤송이가 트여 굵은 알밤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로 톡 톡 떨어진다.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가 있다하여도 어울리는 마을, 동화속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왕곡마을 입구 장승과 항아리, 항아리를 이용한 초가집 굴뚝


영화 동주 촬영지 큰상나말집,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
집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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