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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Jun 17. 2023

등대의 섬, 풍도

경기도 안산 풍도 

 

갑신정변 후 1885년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서 양국의 영향력의 균형을 위하여 텐진 조약을 맺는다. 그중에 "조선에 출병할 경우 상호 통지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그때만 해도 조선은 청나라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 나라였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이 일어나고 조선은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한다.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자 일본도 질세라 조선에 군대를 보낸다. 일본의 야심은 군사적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청이 가진 조선의 주도권을 획득하려는 것이었다.

 

청나라는 커져가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주도권을 견제하기 위해 1894년 7월 23일 일본에 통보하지 않고 2차 파병을 강행한다. 25일 아침 아산만 근해에서 진을 치고 있던 일본 순양함은 텐진 조약을 어긴 채 들어오는 청의 군함 세 척과 영국 군함 한 척을 발견한다. 화력이 가장 강한 청나라의 제원호는 백기를 걸고 도주하였고, 위원호는 한 시간의 교전 끝에 격침되었다. 세 번째 군함 광을호는 화포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화약고가 폭발하여 그대로 좌초되었다. 영국 군함 고승호는 일본군과 협상 결렬 후 전투 30분 만에 침몰한다. 전체 여덟 시간의 전투 끝에 청나라 군인 1,200명 중 살아남은 자는 167명뿐이었다. 청일전쟁의 서막인 이 전투가 바로 1894년 7월 25일에 일어난 풍도 해전이다. 이때 해변으로 몰려온 청나라 군사의 시신들을 풍도의 주민들이 발견하고 양지바른 지금의 “청나라 군사 잠든 곳”에 그들의 시신을 묻어주었다. 


풍도항
풍도 가는 배를 따르는 갈매기와 바다에서 본 제부도 삼형제바위

하루에 한 번만 편도로 운영되는 풍도행 여객선은 사람들에게 하룻밤을 머물게 한다. 작은 섬에 배편이 불편하여 3월 야생화가 피는 시기가 아니고서야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꽃이 지면 어떤가, 꽃을 대신하여 들를 곳을 찾아 나선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제부도 삼형제바위는 제부도에서 보는 것보다 각각이 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배를 따르던 갈매기 서너 마리가 제 갈 길로 떠난다. 여섯 개의 섬이 모인 육도 곁을 지나 “작은여뿔선착장”에 닿았다. 항구 주변은 빛바랜 야생화 사진이 걸려있고, 마을 주민 몇 명이 의자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눈다. 선착장 옆의 풍도항은 잔물결 위에 출항한 지 오래되어 보이는 고깃배 몇 척과 등대 한 쌍이 덜 핀 꽃봉오리처럼 색깔을 내비친다.



대남초 풍도분교와 아이들이 담벼락에 그린 물고기

포구 어귀에는 1933년 진명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대남초 풍교분교가 있다. 첫 회 졸업생이 여덟 명이었다고 하는데 그때도 이 섬의 인구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2021년 이 학교는 한 명의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되었는데 그마저도 Covid-19로 인하여 비대면 졸업식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9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이곳 마을 사람들이 다녔을 하나뿐인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이다. 건물 벽에 걸린 시계는 멈추었지만 국기봉 옆 둥근 풍향계는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아직도 운항 중이다.


해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찬찬히 걸으며 풍도의 이야기를 읽는다. 고 씨 할머니 세 자매 이름과 왕년에 육지에 오갈 길을 도맡았던 여객선 왕경호의 모습, 섬사람들이 기뻐했을 풍도유치원이 문을 연 것과 풍도 출신 김준봉 시인이 고양을 노래한 <향사>라는 시 등이 필름 속 검붉은 사진처럼 바닷길 경계석에 그려있다.

마을 어르신이 썼을 법한 이 섬 유일한 교통표지판 "천천히"를 지나면 청엽골 해변이다. 전사한 청나라 군사들의 시신이 밀려왔던 곳이라고 한다. 해안가 몽돌에는 청군의 혼을 위로하듯 분홍빛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마음이 따뜻한 사람만 진달래 몽돌을 찾을 수 있다는 설화가 있다. 덜컥 겁이 나 해변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해변이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 섬의 정북 쪽 언덕에는 후망산 등대가 있다. 가파른 계단 위로 하얀 등대가 솟아있다. 나무계단은 관리가 되지 않아 곳곳이 무너진 상태다. 오랫동안 사람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잡풀이 계단을 덮었다. 하얀 팔각의 등대는 인적이 오래되어 보이지만 밤에는 평택항과 당진항에 드나드는 뱃길을 위해 자동으로 불을 밝혀주고 있다고 한다. 동쪽 숲 아래로 여섯 개의 섬 육도 모여있고 북쪽으로는 드넓은 서해가 펼쳐있다. 이틀에 한 번 오고, 이틀에 한 번 가는 여객선을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등대에서 내려와 단풍군락지를 지난다. 풍도의 한자 이름에 대해서 말하자면 원래의 풍도는 단풍나무가 많아 단풍나무 의미의 楓島였다. 아름다운 단풍나무 섬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청일전쟁 후 일본군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豊島로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주민들의 요청으로 2021년 국토지리정보원이 옛 이름으로 변경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인터넷상의 지명이나 섬 안의 이정표는 고쳐지지 않은 상태로 사용되고 있다. 豊島의 뜻도 좋은 의미일 수 있지만, 풍도의 주민들이 과거에 해산물의 수확이 없는 시기에는 인근 도리도까지 옮기어 해산물을 캐며 살았다고 하니 일본이 개칭한 豊島라는 이름은 이래저래 이 섬과 맞지 않아 보인다.


염소들이 진을 치고 있는 채석장을 지나 북배에 이르렀다. 마치 굴업도의 개머리언덕 절벽의 축소판 모양이다. 캠핑을 금하고 있는데도 불을 피운 흔적과 캠핑의 흔적들이 있다. 썰물에 길이 보인다는 신비의 붉은 바윗길 끝에 노란 북배 등대가 서쪽을 향해 있다. 이곳에는 ~배라는 지명이 여러 곳인데 배는 바위를 뜻한다. 북배는 붉은 바위에서 따온 이름이다.


북배에서 연결된 숲길은 이곳의 보물이라고 일컫는 야생화 군락지로 이르는 길이다. 북배에서 출발하면 정상부까지 오른 후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길은 희미하고 야생화는 다 지고 없지만, 별처럼 맺힌 산딸기가 아쉬움을 대신한다. 야생화 군락지는 안내도에 표시된 "비밀의 정원"이란 표현에 딱 맞다. 산허리에 자리 잡은 서늘한 군락지는 마치 풍도의 심장처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간직되고 있다. 풍도바람꽃, 풍도대국 꿩의바람꽃 같은 흔치 않은 꽃들이다. 내년 봄에는 숲속 이슬 머금은 야생화를 보러 슬금슬금 산 등성이를 올라야겠다.


숲을 빠져나오면 길 아래로 빨강 파랑 지붕의 마을이 모여있다. 풍도항 건너편 물 위로 오른 섬들도 마을을 이룬 듯하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의자왕의 백제를 멸하고 당나라로 가던 중 풍도에 머물며 심었다는 전설이 있고, 인조 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들러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정방이 심었다면 1400년의 수령일 것이고, 인조 대왕이 심었다면 400년이 흘렀을 것이다. 나무의 수령이 500년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두 이야기는 단지 전설인가 보다. 이야기가 어떻든 커다란 은행나무는 등대가 없던 시절 이곳을 드나드는 배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이 은행나무 곁으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해안길로 내려와 다시 풍도분교를 지난다. 학교 담벼락 게시판에 마지막으로 걸린 2019년 '감사 편지 쓰기 공모전' 포스터가 바닷빛으로 바랜 채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시 편지를 쓰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야생화가 다시 피듯 등대 불빛을 따라 마을 사람들의 풍요가 찾아오고,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등굣길이 다시 열리기를 소원하며 점점 붉어지는 석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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