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찬란한 블루

스물다섯, 스물하나

by 한월

3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스무살은 의외로 굉장히 우울하고 시시한 거구나.’라든가 ‘스무살 봄이 되더라도 대학교의 캠퍼스도 상상만큼 예쁘지도 알록달록하지도 않구나.’나 ‘스무살은 원래 시시한 걸로 슬픈 거겠지.’라는 말이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어느 웹툰에서 나왔던 것만큼은 기억하고 있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듯이 공감됐는데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만큼 예쁘고 낭만있는 스무살을 보내고 있다.

나는 예전의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의 별 볼 일 없는 삶도, 이 당연한 삶도 누군가에겐 간절했을 것이라고. 즉, 누군가에겐 나의 이런 평범한 일상도 당연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내가 앞에서 했던 말은 당연지사 누군가에게는 기만으로 들릴 수도 있을 만큼의 여지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성인의 시작인 스무살은 상상했던 것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를 겪고 느껴봐야 한다. 나는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고, 교훈을 얻고, 아아, 이래서 젊음이 좋은 거구나. 선견지명, 탄탄대로, 부귀영화··· 거품과도 같이 아름답다. 희극적 청춘의 3요소란 바로 이런 것이고, 세간에서는 이를 전성기, 시쳇말로 리즈시절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 영원함이란 없다. 이것도 언젠가 꺼질 행운이자 행복이지만 이유 없이 돌아온 건 아니기에 조금 여유를 부리고자 한다. 긁지 않은 복권이란 이런 것이다.

참, 이래서 젊음이 좋다고 하지만 이 영화가 한정적이기에 더욱 찬란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으니 더할 나위 없이 구슬픈 청춘이다.

그러나, 젊음은 마치 한 번밖에 사용 불가능한 무기이다. 우스갯소리로 핵무기와도 같다. 실제로 젊음도 핵무기만큼이나 강력하다. 동시에 허무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금방 끝난다. 핵무기를 터뜨린 직후의 영향은 악영향이나 폐해라는 말로 단정지을 수 있겠지만, 젊음은 이 시기 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놓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나의 미래가 달라진다. 고진감래. 이건 무작정 참으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 결코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다 때려치고 무조건 인내하면 좋은 일이 오리라는 뜻이 절대 아닌데, 흔히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깨닫지 못한다. 살면서 늘 행복할 수 없고, 동시에 늘 슬프고 분노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가 웃으면서 주먹을 꽉 쥐고 있겠는가. 물론 이렇다면 진지하게 전문가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이미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이 참 유감이다.

각설하고, 왜인지 모르게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생각남과 동시에,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듣고 싶어진다.

“너의 향기가 실려 오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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