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렇게 숟가락을 들고 작업을 할까

2022년 여름의 기록

by 한월

누가 이렇게 숟가락을 들고 작업을 할까. 아마도 상스럽게도 나밖에 없겠지.

카페에 들어온 나는 하릴없이 노트북 전원을 켜서 작업, 아니,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랄까 보고서 같은 느낌이라서, 아니, 아니다. 분명 이것은 일기이리라.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민폐 손님으로 취급 받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요즘 세상이 카드로 돌아간다는 것을,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알지 못했다.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역시 무지는 죄이다. 씁쓸하지만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나는 반박조차 못한다.

남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내가 무엇을 먹든, 내가 무엇을 입든,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아무도 관심은 없는 게 이 세상의 도리랄까 요즘에는 그런 추세인 듯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그런 도리를 모르겠다. 그저 냥냥거리는 고양이가 나보다 훨씬 이 세상의 그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초콜릿 파르페를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지 차라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 지경으로 나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조소를 지었고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다.

요 몇 년 간 맨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운 일로 작용하고 있다.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약간의 어폐가 있으니 떠오르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군. 나는 그리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불편한지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렇다고 왼손잡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초콜릿 파르페를 왼쪽 편으로 놓고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라서 자리를 바꾸었다.

문득 부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확하다. 부정확하다니 무슨 의미인 걸까.

나는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니, 머릿속으로 당장 어떻게 하겠다는 선택에 대한 고뇌가 심각한 거다, 나는.

나는 먹으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실수로 스푼에 뜬 초콜릿 파르페의 부산물이 내 작업 도구(노트북)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말이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하며 홀로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긴장을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웃어 보인다. 이것은 실없는 웃음이었다. 한마디로 헛웃음이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사치라는 것을. 사치, 사치, 사치로구나. 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너무 달다. 초콜릿 파르페가. 당 충전이 필요했을 뿐일 텐데. 그게 아니다. 그저 최근에 본 드라마가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이리라. 그것의 장르는 브로맨스였지만 평소에도 좋아하는 장르라서 그건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그것이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직도 이 종이 한 장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약간 분하다. 아직 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이상한 강박 증세를 보이며 작업에 열중한다.


*


갑자기 모든 게 싫증이 나고 피로감이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만도 한 게 오늘은 마치 소설가 구보 씨처럼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학교에, 오후에는 식당에, 병원에, 그리고 지금 카페에 있다. 어제는 괜히, 하릴없이 시내에 나가서 사치를 부렸다. 오늘처럼 말이다.

오늘은 여름날에 어울리는 화창한 날씨에 땡볕이 드는 날이다. 꽃구름이 쨍한 푸른빛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멍하게 만든다. 가히 매혹적인 흰색의 수화(水花) 사이로는 햇님이 손 흔들고 있다. 직사광선이 줄기를 뻗어서 인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인사를 해줄 도리도 없다. 무안한 마음만 들뿐이다.

나는 얼른 이 짓거리를 중단하고 수학 문제들을 풀 생각에 뜨악했다. 나는 수첩(플래너)를 펼쳐 보았다. 할 일이 남은 게 두 개 있다는 것은 펼쳐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괜히 펼쳐보고 오늘의 교훈을 최근에 즐겨 듣는 노래의 제목과 가수의 이름을 썼다. 참 할 일을 어떻게든 미룰려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니 우스워졌다. 같이 웃을 이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 퍽 들었지만 혼자가 익숙한 나에게는 큰일이 아니다.

해야되는 일은 언제나 즐겁지 않다. 즐겁지 못한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었지만 문장에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일기를 이렇게 아무런 갈등도 없이 쓰는 건 읽는 사람에게 민폐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다. 하지만, 일기는 보통 단조롭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그것이 특정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 마치 일기라는 사람의 변호인이 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이것은 아침 자습 시간에 읽은 배심원 지문 탓이리라.

유쾌하지 않소, 전혀 유쾌할 게 없는 일상이고 하루가 소중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감상은 그것밖에 할 수가 없다. 유쾌하지 않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고 그 방법 외의 도리가 없다.

나카하라 츄야의 봉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사랑하는 것이 죽었을 때에는,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것이 죽었을 때에는,

그 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업이 깊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면,

봉사하는 기분으로 살아야 합니다.

봉사하는 기분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죽었으니까.

확실히 그것은, 죽은 것이니까.

더 이상 어떤 것으로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그것을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

봉사하는 기분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봉사하는 기분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봉사하는 기분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바뀌는 것도 없어요.

그래서 전보다, 책이라면 숙독히.

그래서 전보다, 사람들에겐 공손히.

템포 정확히 산보를 하고

밀짚모자를 경건히 짜엮어서,

마치 이래선, 장난감 병정.

마치 이래선, 매일같은 일요일.

신사의 양지를, 흔들흔들 걸으며,

아는 사람에겐 히죽 웃어보이고-,

엿장수 할아범과 사이좋게 되고,

비둘기에겐 먹이를 훌훌 뿌리고,

날이 눈부시게 됐다면, 그늘에 들어가,

거기서 지면이라든가 초목을 다시 봅니다.

이끼는 실로 무성히 자라 있고,

축복 받을 만한, 오늘은 화창한 날.

참배인들도 졸졸 걷는데,

나는, 아무래도 화가 납니다.

실로 인생, 일장의 춘몽

고무 풍선의, 아름다운 술안주.

하늘에 올라가, 빛나고, 사라져서-

이야, 안녕. 요즘은 어때?

오랜만이네, 다음에 한 번 만나자.

거기의 어딘가에서, 차라도 한 번 마시죠.

시원스레 찻집에 들어가,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까지밖에 쓰여 있지 않아.

담배 몇 대를, 뻐끔뻐끔 피우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각오를 행하고,-

밖으로 나가면 실로 활기찬 분위기!

-그럼 또 다음 번에, 부인께 안부 전해주세요.

저쪽에 간다면, 새 소식을 전해줘요.

그다지 술은, 마시지 않는 편이 좋아요.

마차가 지나간다면, 전차도 지나가니,

실로 인생, 순백옷을 입은 새 색시의 행차.

눈부시고, 아름답고, 그럼에도 고갤 숙이고.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도 넌더린가?

그럼에도 마음을 폿-하게 만들어.

실로, 인생, 새 색시의 행차.

그럼 여러분,

기쁨 넘치게, 슬픔 넘치게,

템포 정확히, 악수를 합시다.

결국 우리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정직함 몇 가지와, 그 이상의 마음가짐.

네, 그럼 여러분, 네 다함께

템포 정확히, 악수를 합시다.


나카하라 츄야-”춘일광상”


꽤 난해하지만 시인은, 작가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마음에 든다. 나카하라 츄야 특유의 유쾌함도, 내면의 감정도 잘 드러나 있는 봄날의 미친 생각인 게 확실하다.

그런 일본 문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스스로도 자신의 글이 난해하고 읽는 사람이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의 친애하는, 나의 유일한 독자인 친우에게 감사를!

그녀는 심성이 본디 순해서 좋은 말밖에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실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볼 때마다 안쓰럽긴 하지만 유일하게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그것도 진지하게 나름대로 꼼꼼히 최선을 다해서 읽어주니 참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조차 그녀에게 갈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속으로는 보내기에는 조금 낯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일기를 보내는 것을 포기했다.


*


산수는 역시 사람이 할 게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가 먼저 저런 암호를 만들어 장난을 쳐놨는지 몰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리라. 산수도 그저 하릴없이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일 뿐이다. 나는 혀를 휘두르며 문제지를 내려다 본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까내리는 건 여기서 그만 두고, 나는 카페를 나와 근처에 있는 수성못으로 산책을 가기로 결심했다. 밖은 해가 지고 어둑해지고 있었다. 더 어두어져서 야경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아서 여유를 부리고 싶어도 마음 편하게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사람은 역시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이 가장 편해진다는 것을 요사이에 나는 깨달았다.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문서가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손상되고 없어져버리는 상상을 했는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또 씁쓸해져선 풀이 죽어간다.

바깥에는 드디어 가로등이 켜졌다. 2층인 카페에서는 높은 곳에서의 경치를 나름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드디어 할 말이 없어졌다. 무엇인가를 쓰려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는 일은, 인위적인 일은 역시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뭔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욱 더 인위적인 것들이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우선적으로 여긴다.

무엇이 맞고 틀린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시비와 선악, 귀천 등등 따지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좀 덜 복잡했으려나. 하지만, 너무나도 평이한 세상은 존재할 수 없을 뿐더러 존재하더라도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진다. 요컨대, 너무 편하게만 살면 도태하듯이 세상도 그렇다.

나는 아직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의 상식은 알고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춘기 소년, 소녀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과연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답다.

이제 슬슬 나가볼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어째선지 끝을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제처럼 혈기 왕성하게 노트북의 배터리가 바닥이 날 정도로 글을 한 바탕 쓰고 싶었지만 멈춰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시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많아 보이지만 기다려 주지 않아서 적다는 모순이 있다. 나한테 글을 쓰는 일은 아무래도 놀이에 불과한 듯하다. 언제쯤 끝날까 라며 기다려주는 이는 없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생긴다. 놀고 싶은 욕구가 말이다. 곧 있으면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니 정말 슬슬 나가볼까. 나는 절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언제나, 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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