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적막

무더위와 무기력

by 한월

이 매너리즘이 내 호르몬 과다 분비 때문이리라고 생각하는 찰나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또 약물에 관한 것이었다. 아니다. 또 다시, 지나간 과거에 대한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꽤나 모범생이었다. 그것을 마치 보란듯이 내 방에는 바른 글씨체로 작성된 노트와 각종 자질구레한 상장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미화된 자화상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현재와는 다르게 성적에 미친듯이 연연하는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전교에서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매달렸다. 반 아이들이 시끄럽게 내는 소음에 집중이 안 됐지만 무언가에 몰입하는 척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한답시고 학원 숙제를 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늘상 친한 아이들과 학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자만과 동시에 오만함을 키우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내가 했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는 재수가 없을 정도로, 아니, 그저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자면 기만이었다. 그 기만으로 울고 웃고를 반복했었다. 성적으로 내 기분은 좌지우지되는 그런 나나날들을 보내고 장학금을 받았다. 비록 그것이 국가의 복지의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이 자신의 진심을 가로막았지만 말이다.

그저 이런 일이 지속될 줄만 알았고 아무렇지 않고 당연한 일인줄로만 알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을 이런 상황에서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만, 어쩜 그게 내게 독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는 자해를 할 정도로 우울증이 극심한 상태였고 이것은 지난 2년 간 주변 이들 중 딱 한 명만을 빼고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결국 스스로의 매너리즘과 쇠약해진 정신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해 오다가 가출을 하게 되었고 또다시 자해를 했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고 치료를 받았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내가 지금 또다시 죽음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이 열대야의 무더위에 짓눌려 수면의 수렁에 빠지고픈 욕구를 차마 이기지 못한 채 봄이 아닌 여름의 적막을 즐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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