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2
감명 깊었던 일본 문학의 영향
그래. 나는 생각이 났다. 드디어 생각이 났다.
나는 이 손으로 노래를 작곡할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 요컨대 나는 내 감정과 생각을 노래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요목청과 입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할 수 없다. 허나, 작사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할 수(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손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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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게는 양이 한 마리, 아니 백 마리가 있소.”
나는 문득 이런 독백을 하고 마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런 나를 보고 참 까다롭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 때문에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배려의 일종이다. 일차적으로는 남에게 초조하게 느낄 수 있게 할 수는 있으나 이차적으로는 그들을 하여금자신을 절벽 위의 한 송이의 꽃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될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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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 친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에게 맞추라는 식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이리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이웃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그 혹은 그녀에게는 사처가 될 수 있을 지언정 나는 또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은 분명 경계라는 신호에서부터 오는 것이리라.
일본에서 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기와라 사쿠타로 선생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무로 사이세이 선생도 서로의 작품만 애독했으나 첫 대면을 했을 때는 서로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일본에 국민 시인이라고 불리는 키타하라 하쿠슈 밑으로 들어가 문하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세 사람이 모여 시를 쓰고 읊었던 때가 있었지만 무로 사이세이 선생은 소설가로 전향을 하고 나서는 하기와라 사쿠타로 선생은 그것이 자신의 탓인양 슬퍼했다고 한다.
"나는 네 시가 좋아. 그런데 어째서..."
"사쿠(하기와라 사쿠타로 선생의 애칭)는 대단해.
분명 너의 시는 미래에 전승될 거야."
시인의 세계는 이런 슬픈 우정이 있는가 하면 소설가의 세계에는 또 다르다. 인간 실격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와 그의 절친한 친우인 단 카즈오는 감동적인 우정을 보여 주었다.
"너는 천재야. 잔뜩 글을 써줘."
단 카즈오가 말했다. 그러자 다자이 오사무는,
"쓸게." 하고 답했다.
단 카즈오와 다자이 오사무는 둘 다 소설가이자 화가였던 사토 하루오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소설 집필을 이어 나갔고 그들은 오다 사쿠노스케나 사카구치 안고와 같이 무뢰파라고 불리는 부도덕하고 사회에 반항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무뢰파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도덕은 곧 그들의 신념이었다. 사카구치 안고가 타락론이라는 작품을 쓸 정도로, 아니 그들은 정말로 너무나도 부도덕한 사람들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그 유명한 인간 실격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어쨌든 다자이 오사무와 단 카즈오의 우정 또한 최종적으로는 비극적이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세 번의 동반 자살을 끝에 사망한 이후로 단 카즈오는 무뢰파의 마지막 작가로 자리 남았다. 그는 외톨이였던 게 분명하다.
이 비극적인 우정이 작가에게는 불행으로서 글을 쓸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들이 비록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언정 그들은 슬픔의 절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슬픔에 절필하지 않을 수 있는, 언젠가 빛을 발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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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다. 저녀석, 참으로 독하다.”
나는 그런 말을 참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와 그녀의 관념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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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이라는 한 줄을 적어주면 좋을 텐데…….
감상은 어땠냐는 말은 인내하지 못한 것의 결과일지어니…….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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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 글의 본질이 있다고, 가치가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는 걸까. 그저 그들만의 격식을 차린 겸손에 불과하지 않을까. 독자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추후에 소설을 퇴고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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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손으로 써내려 간 모든 것들만이라도 빛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