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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11. 2022

설흔의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2014)

나다움을 찾아가는

읽은 날 : 2015.9.27(주)

쓴 날 : 2015.9.29(화)

면수 : 296쪽

* 7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1


추석 보너스! 시댁에서 집안일 마무리하고 다른 가족들 TV 볼 때 읽었습니다. 노란 표지에 나비 그림, 깔끔한 편집이 반갑고, 저자 소개 중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유독 '나'와 '너'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깊은 공명을 일으키며 고전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에 마음이 울립니다. 가 본 설흔 작가님 소설 중에선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와 함께 가장 좋았습니다. 그만큼 글이 탄탄하고 따뜻합니다.


책의 원전인 호산외기(壺山外記)는 조희룡이 쓴 조선 후기 여항인(閭巷人)들의 전기(傳記)입니다. '호산'은 조희룡의 호, '외기'는 민간인에 관한 기록입니(286쪽). '여항'은 꼬불꼬불한 골목으로 서울의 중간 계층이 사는 곳다. '여항인'은 18세기 이후 형성된 서울의 중간 계급이며 기술직 중인과 경아전(京衙前)을 포함합니(287쪽).  이들은 능력이 있어도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여항인이 동료들의 전기를 쓴 건 호산외기가 처음입니다.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에는 호산외기에 실린 42명 중 14명이 나옵니다. 화가 최북, 관리 김수팽, 바둑기사 김종귀, 중국어 역관 임희지, 시인 천수경, 교서관 장혼, 술집 주인 김양원, 노비 이단전, 시인 조수삼, 책 장수 조신선, 화가 김홍도, 일본어 역관 이언진, 효자 권재중, 화가 전기(田琦). 김수팽은 강직하고, 조신선은 경쾌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쓸쓸합니다. 장혼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 따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2


주인공은 '그(조희룡)'. 너무 빨리 떠난 전기(田琦) 이야기를 '그'는 못 씁니다. 글 막힌 '그'에게 '벗'이 옵니다. 호산외기를 같이 읽자고. '그'는 전에 쓴 글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호산외기 쓸 때 '그'에 따뜻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이름 없는 여항인의 아름다움을 읽고,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인물처럼 세심하게 기록하는 마음.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그 마음'을 잃습니다. 가슴 속에 임금과 김정희와 전기가 자리하면서 자신의 존재도 잃었습니다.


"그는 문갑을 뒤져 책, 그림, 벼루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잠시 망설이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그런 뒤 붓을 들어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살았다.


별것도 아닌 문장 하나에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과 함께 새로운 문장이 다가왔다. 그는 그 문장들을 다 받아 적었다. 날이 샐 무렵 그렇게 받아 적은 문장들이 하나의 글을 이루었다."(253쪽)


'그'가 울 때 도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그'가 쓴 글(254~270쪽)과 전기의 전(283~284쪽)에서 글과 삶의 첫마음을 찾아가는 '그'의 고단하고 뜻깊은 발걸음을 봅니다. 책 속 많은 사람들이 울림을 주지만, '그'가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깊은 여운으로 어립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다움'을 고민하다 길 잃은 가 '그'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겠습니다. '그'가 을 찾아가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소설 한 편이 오래오래 남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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