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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Nov 17. 2021

나의 사랑 수업일기

초임 때부터 수업일기를 썼습니다. 임용고사 3수하다 기간제 교사로 처음 교단에 선 날, 학생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세 학년 23학급 한문수업 전담하면서 밤에 공부하던 순간순간을 한 장 한 장 담았습니다. 시행착오 많았고 거친 아이들 사이에서 한없이 앓았는데, 시린 마음을 한글파일에 털어내면 다음 수업에는 웃으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업일기를 겁없이 난중일기라 불렀습니다. '따뜻할 난(暖)' 써서 '따뜻한 마음으로 쓰는 일기'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4년 전 『난중일기(亂中日記)』 완역판 읽다 부끄러웠습니다. 삶과 죽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붓으로 숨 고르며 쓴 일기와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 자판으로 새긴 글이 같을 수 있을까요. 오랜 이름이라 계속 쓰는 대신 그만큼 진중하고 숙연하게 가르치며 배우려 합니다.

 

한글파일에 쓰고 출력해서 모으던 수업일기는 교직 9년차부터 제본한 책이 되었습니다. 같은 부서 선배 선생님께서 수업자료를 스프링 제본해 보관하시는 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자료 정리하다 2008년 이전 한글파일이 날아간 걸 알았습니다. 출력하지 않았으면 잃었을 순간들...... 소소하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나날이니 더 잘 모으고 갈무리해야겠습니다.


틈틈이 메모하면서 제 삶과 수업이 작아 보일 때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얻었고, 수업에 대한 첫마음을 간직하려 애쓰는 감수성을 키웠습니다. 블로그에 이웃공개로 쓰면서부터 여러 선생님의 따스한 말씀에 더 부지런히 쓰게 됩니다. 작은 글 읽고 답글로 알려 주시는 수업 관련 아이디어는 바쁜 일상에 반짝이는 선물이었습니다. 글 쓰는 습관이 붙으면서 업무 감각이 다듬어지는 뜻밖의 기쁨도 있었습니다.

 

12년간 조금조금 쓰던 글이 모여 공책 한 권, 스프링 제본책 일곱 권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얼마 전 시작한 한문과 교과보충 집중프로그램 수업일기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오랜 일기 읽고 갈무리하면서 '적소성대' 네 글자를 꼭꼭 다집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무언가를 이루듯 소소한 메모가 더 좋은 선생으로 살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 적소성대(積小成大) : 작은 것도 쌓이면 크거나 많아진다는 말입니다.

작년 수업일기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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