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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선물

'냥냥아 마음만 받을게 ㅠ'

by 한나Kim

가끔씩 내 글에 등장하는 냥냥이. 한창 나를 유혹하다가 갑자기 돌아선 그였다. 결국 거의 잊힐 뻔할 때, 길거리에서 2번이나 마주쳤던, 어찌 보면 나랑 '아주 인연이 깊은 그'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이나, 그것도 우연히, 게다가 길 가다가 마주치다니. 이런 우연 같은 필연 덕분인지 그도 내가 생각이 났나 보다. 두 번째 만남 후 며칠 뒤, 그가 갑자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집 앞에 나타나,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문 밖에서 나를 고요히 바라보며 나오라는 눈빛을 보냈다.


아이고 그럼요.

올만에 귀한 분이 오셨는데, 제가 나가야죠.


오두방정을 떨며 나가서 그의 배, 겨드랑이, 턱, 등, 얼굴, 꼬리까지도 여기저기를 아주 시원하게 긁어드렸다. 만족스러웠는지, 한참을 골골거리고 있다가 꼿꼿하게 일어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갈길을 가는, 역시나 도도한 녀석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여행을 가는 게 생각이 나 그의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냥냥아~ 우리 2주간 집에 없어. 북섬으로 여행가! 우리 집에 없을 거니까 오지 마~"


들은 척도 않고 제 갈길을 가는 요물님.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2주간 집에 없으니까 여기에 오지 말라고! 알았지!" 하니까 그제야 냐옹~ 하고 대답하면서 쿨하게 떠난 그다. 그때 뭔가 이놈이 진짜 알아들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고양이는 정말 요물이지 않나 싶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밀린 집안일부터 또 일도 바로 시작해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마당을 보는데..


이게 뭐야? 세상 연약하고 귀여운 참새 한 마리가 구석에 누워있네. 살아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사체로 말이다 ;;


그때 문득 스친 생각이 '냥냥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구나'였다.


고양이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주인한테 쥐나 뱀 같은 걸 잡아서 준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영광스럽게 나도 받았네 그 귀한 선물을. 그것도 하늘을 나는 참새를 말이다.


힘들게 잡았을 텐데 그냥 먹지 뭐 이런 걸 다.. ㅠ


불쌍하고 가여운 참새, 요하네스가 잘 묻어줬다.


말을 다 알아듣는 영특한 녀석이니 다음에 만나면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할 예정이다. "냥냥아 니가 준 선물 고맙지만, 나는 필요 없어. 다음에는 절대 주지 말고 너 먹어. 마음만 받을게"라고 말이다.



참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본다. 즐거운 인생이다.




냥냥이와의 첫 만남

https://brunch.co.kr/@hanna0425/90


냥냥이와 우연한 만남

https://brunch.co.kr/@hanna04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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