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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Aug 27. 2021

자가격리 해제 12시간 전

'세상의 모든 경험에는 다 긍정적인 면이 있다.'

아주 짧았던 독일 방문 후 코로나 시대라면 피해 갈 수 없는 2주간의 자가격리가 혹처럼 따라왔다. 12일간의 여행 후 14일간의 격리가 안타까웠지만, 당연히 따라야 한다. 이 긴 기간 동안 애들이랑 남편 그리고 나, 4명이서 어찌 집에서만 있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안 그래도 투닥투닥 잘 싸우는 편인데, 앞으로의 2주간은 지옥이겠군 이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더랬다. 나는 원래 집순이라 2주간 집에만 있어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밖에서 방방 뛰어놀아야 하는 둥이는 어쩌지, 하루에 무조건 만보를 걸어야 하는 남편은 또 어쩌나... 분출되지 못한 에너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오면 그것도 힘들겠구나..라고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다 같이 생활해보니 어라? 생각보다 힘들지 않네~ 싶었다. 처음부터 서로 조심하자는 얘기를 했고, 최악의 상황도 예상을 해봤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생각보다 아주 가볍게, 그리고 서로 배려하며 무난하게 지나간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런지, 2주간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인 듯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였으니 나나 로버트나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아주 가끔만 하던 명상도 거의 매일 했고, 스마트폰을 보느라 거의 보지 않던 책도 매일 읽었으니 이야말로 자가격리의 긍정적인 면이 아닌가. 또한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1도 없기에 밤마다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 보니 자가격리 해제 12시간 전! 


아이들은 원래 둘이서 잘 노는지라 집 안이라고 다를 게 없이 열심히 놀았다. 집은 개판이었지만 그렇다고 어질러진 집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눈을 질끈 감고 이틀에 한 번씩만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점심은 대부분 로버트가 했고, 저녁은 내가 했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한 번씩 배달음식을 먹었다. 


4시 반이면 어김없이 둥이들을 부르는 절친들이 찾아왔다. 우리 집은 2층이다. 둥이들은 집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우리는 지금 자가격리 중이라 나가면 벌금을 내야 하거나 감옥에 갈지 모른다며, 27일 12시에 나갈 수 있으니 그때 놀자 등을 큰소리로 매번 설명해줬다. 둥이의 절친들 또한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에 한 번씩 그냥 나와서 놀면 안 되냐고 꼭 물어보았다. 그럼 또 동네 떠나가라 똑같은 설명을 하는 둥이를 보며 저것들은 왜 저러나. 왜 저리 모자라나 싶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아주 동네방네 광고를 해라 광고를...'


자가격리 생활을 살짝 공유하고 싶다. 우선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 격리 통지서와 함께 큰 박스가 온다. 그 안에는 전자 온도계, 94 마스크, 황사 마스크부터 주황색 폐기물 봉지, 손소독제, 뿌리는 살균소독제, 마지막으로 우울함을 다스리는 작은 책이 들어있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쓰레기를 밖으로 반출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기저귀 역시 2주 후에나 버릴 수 있다고 한다. 일주일만 지나도 집 안에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차는데 2주간 그 쓰레기를 끌어안고 있어야 하다니. 게다가 음식물 쓰레기는 어쩌나... 그렇다. 자가 격리자는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지 못한다. 그 모두를 냉동실에 얼렸다가 2주 후 격리가 끝나면 버려야 한다. ㅜ_ㅜ 하여 우리는 감자 요리를 먹을 때도 이왕이면 껍질까지 먹도록 노력했고, 껍질이 많은 오렌지 같은 것은 최대한 안 먹도록 노력했다. 사과 역시 껍질채 먹었다. 


그리고 매일 오전 10시, 오후 4시에 자가격리 앱에 나의 상태를 보고해야 한다. 또한 매 같은 시간에 친절한 AI님께서 전화가 와서 어제와 다른 증상은 없는지 등을 물어본다. 물론 예 또는 아니오로 간단하게 대답하면 된다. 중간에 낮잠이라도 자서 핸드폰의 움직임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리를 이탈했는지 확인해주십시오!' 등과 같은 경고 문구가 뜬다. 자가격리 앱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시다. -_-


백신 관련해서는, 로버트는 한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로 1차를 맞았고, 독일에서 2차로 화이자를 맞고 왔다. 때문에 자가격리 대상자에서 제외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에 해당되지 않았다. 독일에서 2차를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확인증을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외국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백신 접종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지를 미리 알아보고, 잘 챙겨서 입국하는 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자가격리가 해제되기 이틀 전에는 근처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테스트를 한 번 더 해야 한다. 그때는 자차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이동하기 전에 문자로 담당 공무원에게 '지금 코로나 검사하러 보건소로 이동합니다.'라고 보내면 되고, 갔다 와서는 역시 '집에 돌아왔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내면 된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했듯이 큰 일을 하고 있는 자가격리 앱이 지속적으로 "자리를 이탈했습니다!"와 같은 경고 문구를 보내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그 먼 보건소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이 기회에 꼭 걷자고 애원하는 로버트를 나는 이길 수 없다. 독일인의 한결같음은 바로 이런 것이다 -_- 


결과는 오늘 오전에 받았다. '전원 음성' 

드디어 내일 12시부터 자유다. 


....


길거라 생각했던 14일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시간의 쫓김이 없이 그냥 하루하루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바쁜 현대사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2주간 집에 갇혀있어야 하는 자가격리가 나름 다른 의미에서의 힐링을 선사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맨날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어. 그 당시에는 후회스럽고 슬프고, 쓸모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그때를 뒤돌아 보면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알게 될 거야. 그게 인생이라 생각해."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경험에는 다 의미가 있고, 또한 그 경험을 통해 배우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가격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치만.. 그래도 자가격리를 한 번 더 하라고 하면 안 하련다... 하..한 번이면 충분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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