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독일을 다녀왔다. 가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무사히 다녀와서 지금은 가족들끼리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중이다.
우선 출국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해외 출국을 하기 전, 코로나 테스트를 받은 후 영문 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비행기에 탑승이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에는 독일 입국 72시간 내의 증명서만 가능하기에 출국 이틀 전에 테스트를 받고 그다음 날에 결과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문제는 나의 출국일이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주말에 코로나 테스트 증명서를 발급하는 기관이 없어서 엄청 우왕좌왕했다는 거. 다행히 명동 백병원에서는 가능하다는 정보를 듣고, 검사를 진행해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체크인하면서, 코로나 테스트 증명서가 음성인지를 확인했다. 모든 수속을 마친 후 비행기에 탑승해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모두가 코로나 시국이 지겨운 게 확실하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나도 시동생이 작년에 결혼을 했다면 안 갔을 텐데, 올해는 더 안 좋은 상황임에도 다녀온 것을 보면... 사실 나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었다.
총 12시간의 비행 후 기차로 1시간 반을 더 달려서 독일의 강원도라고 불릴 법한 시댁에 도착했다.
시댁은 300여 개의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6월에 가면 시댁 정원에 심어져 있는 체리나무에서 체리를 마구 따먹을 수도 있다. 집에서 5분 거리에는 큰 호수가 있어서 갈 때마다 매일 2번씩 수영을 한다. 처음에는 발이 닿지 않는 호수에서의 수영이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이제는 호수나 바다에서의 수영은 나에게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강 중간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고 누우면 뭐랄까, 하늘과 나 그리고 땅과 물이 연결된 느낌.. 아무튼 자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에게 강처럼 편안한 휴식처는 없는 듯하다.
둥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시댁에 갔을 때는, 카약을 타고 근처 300여 개의 호수를 지나다니며 마음에 드는 캠핑장에서 몇 박을 하곤 했다. 이곳은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이들, 그리고 캠핑족들에게는 정말 천국인 곳이다.
시댁에 도착한 다음 날 화이자 1차 접종을 했다. 독일에는 백신이 남아도는지, 아무나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유명한 공원이나 바닷가에 가면 지나가는 행인들 누구라도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백신 버스가 세워져 있었다. 백신을 구하기 어려워 전 세계가 아우성인데, 이곳은 남아돈다고 하니 뭔가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누구는 공평하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불공평하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까.
도착한 주 금요일부터 막내 시동생의 결혼식이 시작됐다. 5년간 동거하며 지내던 여자 친구와의 결혼식. 사실 그냥 결혼식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주례도 없고, 정장도 입지 않고, 혼인서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는 그냥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며칠간의 파티였다는 게 맞는 듯하다.
시동생은 베를린 근처의 성을 빌려 친인척 및 친구들을 초대했다. 손님들은 그 근처 게스트하우스나 성 안에서 자거나, 텐트가 있는 사람들은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음식 준비랑 정리정돈은 친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하고, 모두 어울려 먹고, 저녁에는 노래를 잘하는 시동생과 그 친구들이 밴드를 꾸려 라이브 음악을 들려줬다.
50명 정도가 모이는 결혼식을 한다고 해서 코로나에 걸릴까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결혼식 참석 전 셀프 코로나 테스트기로 음성을 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고, 또한 모든 이벤트는 정원에서만 진행이 됐기에 생각보다 안전했다. 그리고 유니크했고, 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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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결혼식이 끝나고, 독일의 발틱해(Baltic Sea)로 가서 3박을 했다. 독일 사람들은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걱정도 되고 불편했지만 역시 마스크 없이 걸으니 이렇게 좋구나. 그냥 유쾌하고 행복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도 즐거웠고, 깨끗한 숙소에서 밥을 해 먹는 것도 행복했다. 짧은 3일이 지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날이 돌아왔다.
한국에 입국하기 72시간 전에 독일에서 다시 한번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영문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PCR 증명서 발급에 든 돈만도 거의 비행기 값이니, 세상이 정말 요지경인 듯싶다. 어쩌다가 우리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이제는 받아들일 때도 됐건만 아직도 뭔가 억울하고 힘들다. 예전의 자유로움이 그립고, 또 그 세상이 다시 오기는 할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 안 되는 걸로 징징 거려봤자 나만 손해이니..
독일 코로나 테스트 결과는 '음성'.
그걸 본 순간 '오길 잘했군~'하는 기쁨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음성 증명서를 들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찾으러 가는 길은 멀고도 또 멀었다. 몇 명의 사람을 지나야 하는지. 한치의 구멍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열을 재는 분, PCR 코로나 검사 증명서 및 자가 검사증을 확인 후 스티커를 붙이는 분. 그 스티커를 확인하면서 서류가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분을 지나고, 자가진단 앱을 다운로드하였는지 확인하는 분이 또 그 스티커를 확인, 세관을 지나면서 다시 스티커 확인. 마지막으로 공항을 빠져나가기 전 스티커가 있는지 확인 후 가야 하는 동네로 택시를 인계해주는 분까지.
그리고 어김없이 그렇게 검사하는 곳마다 붙어 있는 사인이 있었다. '욕설이나 폭언 금지.' 거기서 일하는 분들은 방역복을 입고 있어 더 힘들 텐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 좋은 얘기를 했기에 곳곳에 저런 사인이 붙어 있을까. 아쉬운 부분이다.
이 모든 프로세스를 지나 짐을 찾으러 나왔을 때, 어떤 독일인 아저씨를 만났다. 그분이 말씀하신 게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긴 프로세스를 거쳤는데도, 독일 PCR 증명서만 확인하는 것보다도 빨리 끝났네."
그렇다. 독일에서 PCR 코로나 검사 증명서만 확인하는 데 1시간 40분이 걸렸더랬다. 하여 우리의 비행기는 거의 2시간을 늦게 출발했다. 한국 공항에 도착 후 너무 체크를 많이 한다며 오버라고 입이 삐죽 나와있던 로버트도 그 아저씨 말을 듣고는 끄덕거리며 아주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