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공부의 상관관계'
뉴질랜드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밖에서 뛰어놀며 자라서인지, 한국에서 운동 좀 한다는 둥이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들의 체력이나 운동신경을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달리기 반대표로 뽑힐 정도로 잘 뛰던 둥이였지만, 여기서는 남아들 중 거의 못 뛰는 축에 속했으며, 심지어 가장 빠른 여아보다도 느렸다. 게다가 한국에는 매달려서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드물어서인지, 반 아이들의 매달리기 실력과는 비교조차 안될 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면 키위 아이들은 5분은 거뜬히 매달려서 도망을 다니지만, 둥이는 30초 안에 모두 떨어졌었다.
그래도 매일 체육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둥이의 달리기랑 매달리기 실력이 늘어, 이제는 여기 친구들이랑 거의 비슷해진 거 같다.
둥이 베프인 MJ는 운동 신경이 탑급이다. 둥이랑 같은 2014년생이지만 키가 거의 180Cm를 육박하고, 달리기 1등, 축구 1등, 농구 1등, 럭비 1등 등, 모든 스포츠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이다. 학교 대표로 럭비/농구 선수로 뛰고 있으며, 높이 뛰기 학원에도 다니고 있다고 한다. 반면,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어서, 수학을 꽤 잘하는 편임에도, 거의 안 한다고 한다.
역시나 둥이 베프인 조브는 키가 작고 말랐지만, 달리기를 MJ 다음으로 잘 뛰어서 반에서 2등이고, 축구, 농구, 럭비 다 잘하지만 그중 농구를 가장 잘한다고 한다. 게다가 공부랑 책읽기를 좋아해서 수학, 역사, 상식 등 모두 잘하며, 반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8학년 수학책의 선행을 끝낸 친구라고 한다.
이렇게 둥이 친구들을 자세히 묘사한 이유는, 1학기 때 있었던 7학년 마라톤 대회의 결과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신기하다 싶었는데, 그 이후, 오래 달리기 같은 종목에서도 늘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공부와 운동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마라톤이나 오래 달리기 같이 '근성이 필요한 종목'에서는, 운동에 타고난 MJ가 아닌, 조브처럼 끈기가 있는 아이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점이었다.
1학기 마라톤 대회에서 당연히 MJ가 좋은 성적을 거뒀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조브가 전교 2등으로, 둥이는 10등 이내로 들어왔다고 한다. 반면, MJ는 거의 마지막에 들어왔다고 한다.
둥이 말로는 MJ가 초반에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2/3 지점이 되자 포기하고 걷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신기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면, 조브는 일정한 속도로 꾸준하게, 그리고 주위 아이들의 속도에 흔들림 없이 달렸다고 한다. 둥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는 맨 뒤였지만, 어느새 앞에 있던 아이들이 뒤쳐지기 시작하면서 10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곳 아이들은 워낙 밖에서 움직이는 활동량이 많다 보니 체력은 좋은 반면, 공부를 꾸준하게 하는 아이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7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수학 연산'을 잘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는 걸 그 예로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즉흥적인 움직임'은 많지만, '계획적 플랜'을 짜서 꾸준히 하는 일은 해본 아이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마라톤이나 오래 달리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운동 능력보다는 꾸준함과 끈기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근성과 끈기는 하기 싫어도 꾸준히 무언가를 해오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면, 둥이나 조브 모두, 꾸준하게 수학/영어 등을 해왔기에, 힘들 때에도 참고 견디는 힘이 길러졌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와 운동이 전혀 상관없는 줄 알았는데, 끈기가 필요한 운동에는 결국, 하기 싫음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꾸준히 해왔던 아이들이 잘할 수 있구나라는 게 나만의 결론이다.
경쟁 구도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은 드나, 그런 자세를 통해 결국 삶을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선을 넘어서가 문제 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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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뉴질랜드 생활이 마무리되고 있는 요즘, 둥이에게 큰 목표가 생겼다. 오래 달리기 만큼은 조브를 이겨 반에서 1등을 하겠다는 것이다! 단거리는 아예 안되지만 오래 달리기만큼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단다. 이를 위해 둥이는 요즘 집 근처 공원에 나가 지옥훈련을 하는 중이다.
얼굴이 시뻘겋게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 돌아온 둥이에게 대체 무엇을 했냐 물어보니, 처음에 공원 10바퀴를 돌고, 그다음에 7바퀴, 그리고 또 5바퀴를 돈 후, 집까지 전속력으로 뛰어들어왔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뜀박질을 하고 집에 와서는 참을 수 없는 근육통에 괴로워하며, 이를 또 이겨내겠다고 이를 악물며 스트레칭을 하는 동물들.. 맙소사 ;;
요하네스는 둥이의 이런 마음을 완전 이해한다면서 자기도 중학생 때 농구를 잘하고 싶어서 매일 점프 연습을 하다가, 결국 100마르크 정도 되는 이상한 점프 기계를 사서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근데 그 사기 기계로 돈만 날려서 아직도 그걸 생각하면 화가 난다나?ㅎ
과연 남자란 종족은 어떤 동물인가. 이 셋 가운데서 나는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오긴 올 것인가. 참으로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