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다문화·다종교 사회의 장단점'
뉴질랜드는 이민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다인종·다문화 국가이다. 때문에 둥이네 반에는 굉장히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다. 전체 23명의 아이들 중에 백인 11명, 황인 10명, 흑인 2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황인은 한국, 중국,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이란 등 분포도가 꽤 넓은 편이다. 이런 Multicultural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장점: 다인종·다문화·다종교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고, 다양한 관점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뉴질랜드는 다인종, 다문화로 이루어졌기에, 아이들이 은근히 같은 인종끼리 놀 것 같지만, 둥이네 반은 인종보다는 마음이 맞는 아이들끼리 노는 편이라고 한다. 덕분에 둥이는 미국에서 5살 때 이민온 흑인 MJ랑 호주 백인 조브,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방글라데시인 마라지, 이렇게 5명이서 친하게 지낸다.
둥이가 말하길 처음에는 다른 인종이 꽤 낯설었으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경계가 사라졌다고 한다. 솔직히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이 있을까. 새로운 문화, 다양한 인종과 어울리며 보다 넓은 시각이 생기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는 것 같다.
반 친구 중에 둥이에게 신선함을 준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가 1학기 때 자기는 아빠를 1년에 한 번만 만난다고 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달님이가, "You must be so sad"라고 답변을 했더니, 오히려 그 아이가 더 놀라며 "Why? No, not at all."이라는 답변을 했다고. 솔직히 그때 나랑 둥이는 '친구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가끔만 만나나 보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저 우리만의 좁은 편견이었다.
그러다 지난 학기에 달님이가 그 아이랑 짝이 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어느 날 그가 자기 아빠라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 아빠는 솔로몬 제도에서 부통령이야. 이 사람이 대통령이고, 이 사람은 총리고, 이 사람은 무슨 장관이고.." 하더란다. 알고 보니 그는 솔로몬 제도에서 끗발 날리는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빠가 워낙 바쁘다 보니 1년에 한 번만 아빠를 보러 솔로몬 섬으로 날아갔던 것!
이렇듯 뉴질랜드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런 경험을 통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단점: 서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반에서는 아이들끼리 모두 평화롭게 어울리며 지내지만, 어른들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2학기가 되자 둥이가 MJ, 조브, 마라지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하여 만약 친구들이 놀러 온다면 한국 양념치킨도 사주고, 맛있는 밥도 해주겠다고 초대를 하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둥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자주 놀았기에, 뉴질랜드에서도 당연히 모두가 우리 집으로 올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초대받은 친구가 집에 안 올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일단 무슬림인 마라지가 울상을 지으며 "아빠가 절대 안 된대"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조브는 방학이 시작되는 주말이라 2주간 할머니 댁에 가야 돼서 못 온다고 했다. MJ는 온다고 했다가, 그날 당일 오전에 약속을 취소했다.
이럴 수도 있구나!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단 무슬림인 마라지는, 종교가 다른 친구 집에 갔다가 혹시라도 돼지고기를 먹을까 봐 그의 아버지가 그런 만남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우리 집에는 영원히 오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MJ는 왜 그랬을까? 왜 온다고 하고 당일 아침에 약속을 취소했을까. 이래저래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그의 엄마가 아들이 너무 심하게 조르니 가도 된다고 했다가, 당일이 되자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 불안해서 취소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참고로 그날은 셋이서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었다.
하여 초대를 다른 날로 바꾸면서 MJ 엄마에게 우리 주소를 주고, 그날 같이 잠깐 차를 마시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 후에야 MJ를 집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약속 당일에 집에 방문하여 나랑 요하네스랑 짧게 인사를 한 후, 차는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그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온 것이다
반면, 백인은 집에 초대를 하면 대부분 거리낌 없이 오곤 한다. 아마도 백인 사회는 한국처럼 친구에 대한 또는 사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브는 그때 할머니 댁에서 2주간 머물러야 했기에 못 왔던 것뿐이다.
이렇듯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는 서로에 대한 불안감이나 불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끼리라면 전혀 느낄 수 없겠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 부분에서 굉장히 예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는 나와 둥이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처음에 이 일을 겪었을 때는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여기는 뉴질랜드가 아닌가.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 종교가 어울려 살아가는 이민 사회. 그렇기에 한국이랑 다른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이런 조심성이 있기에 오히려 사회가 더 잘 돌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며 지내는 나이지만, 요즘 뉴질랜드에 살면서 미성년자 아이들의 삶은 성인과는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참 흥미로운 경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