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둥이를 키우고 있는 나이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마음고생을 말하자면 반나절이 걸릴 듯하다. 자신만만하고, 긍정의 끝판왕이었던 내가, 자존감이 땅 끝까지 떨어졌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임신을 하면 8주를 넘기지 못하고 유산을 하던 그때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난임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첫 번째 임신을 했던 때를 회상해보자면, 2012년 5월 정도였다. 결혼 후 함께 살기 시작한 게 2012년 2월부터였으니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금방 임신을 한 편이었다. 그러다 7주 차에 산부인과를 갔더니 "아기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 주위에서 다들 첫 임신은 유산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두 번째 임심을 했다. 이번에는 잘 되겠지~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다시 8주 차에 검진을 갔을 때 "아기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라는 얘기를 첫 번째 유산 때와 같은 병원에서, 같은 의사한테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라는 느낌. 거기에 여자로서 임신을 못한다는, 이 두 가지의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그들과 인연을 끊을 정도로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 쿨한 척을 하며 친구들을 만났고, 또 늘 그랬듯, 밝고 실없는 이야기를 자주했다..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내 마음은 불안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임심 때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열심히 일을 하다가 아이가 유산됐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 두 번째 임신 때는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그럼에도 유산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모든 원인이 나의 자궁에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밤마다 대리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굉장히 절망적이었고, 또 대리모에진심이었다.
되게 신기한 것은, 나의 모든 촉이 임신으로 향해 있는 그때, 내가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길을 걷든, 내 주위에 온통 임산부만 보였다는 것이다. 세상에 임산부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 많던 임산부를 나는 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가 싶을 정도로.. 아니면 내가 지금 너무 임신이 하고 싶어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가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병원을 옮겨 2013년 3월 경, 다시 임신을 했다. 그런데 7주 경에 생리가 시작됐다. 화학적 유산을 한 것이다. 그때의 감정은.. 음.. 표현을 못하겠네... 그냥 모든 것이 검정색이었다고 해야 하나.. 슬픔 분노 상실감 이런 것을 떠나, 모든 감정이 다 없어져버린 느낌. 그래서 모두가 검은색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나의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 온통 흑색이었다.
나는 임신은 무지하게 잘됐다.. 옷깃만 스쳐도 임신.. 내 손과 발 그리고 몸이 보일러처럼 따뜻한데, 분명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몸이 예민해서 그런지, 임신한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심지어 처음 임신을 했을 때에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이 느껴졌더랬다. 그날 새벽에 뱃속이 화~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어? 배가 왜 이렇게 환~하지? 이거 뭐야?' 하다가 '아 지금 수정 중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말을 믿는 이는 한 명도 없다 -_- 다들 허풍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날 아침 로버트를 보자마자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나의 신기한 경험을 막 떠들어댔다.
"나 임신했어.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는 걸 느꼈다구. 그것 때문에 새벽에 깼잖아~ 불이 탁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니까.나 100프로 임신임!!"
나의 이런 오두방정을 로버트는 '쟤 또 저러는군~' 하며넘겼고, 엄마는 입방정 떨지 말라고 나를 혼냈더랬다. 근데 정말 임신이었다. 그리고 유산. 두 번째도 그랬다. "나 임신했어. 조심해야지" 근데 또 유산.. 세 번째도 그랬다. 근데 또 유산... ㅠ_ㅠ
세 번째 유산을 하면 병원에서는 대부분 습관성 유산 검사를 권유한다. 그러나 로버트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갖고 싶다고 하며 모든 화학적 또는 물리적인 방법을 거부했다. 그리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