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Kim Oct 16. 2021

3번의 유산

'세상에 난임은 있지만, 불임은 없다.'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둥이를 키우고 있는 나이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마음고생을 말하자면 반나절이 걸릴 듯하다. 자신만만하고, 긍정의 끝판왕이었던 내가, 자존감이 땅 끝까지 떨어졌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임신을 하면 8주를 넘기지 못하고 유산을 하던 그때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난임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첫 번째 임신을 했던 때를 회상해보자면, 2012년 5월 정도였다. 결혼 후 함께 살기 시작한 게 2012년 2월부터였으니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금방 임신을 한 편이었다. 그러다 7주 차에 산부인과를 갔더니 "아기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 주위에서 다들 첫 임신은 유산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두 번째 임심을 했다. 이번에는 잘 되겠지~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다시 8주 차에 검진을 갔을 때 "아기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라는 얘기를 첫 번째 유산 때와 같은 병원에서, 같은 의사한테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라는 느낌. 거기에 여자로서 임신을 못한다는, 이 두 가지의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주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그들과 인연을 끊을 정도로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 쿨한 척을 하며 친구들을 만났고, 또 늘 그랬듯, 밝고 실없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내 마음은 불안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임심 때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열심히 일을 하다가 아이가 유산됐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 두 번째 임신 때는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그럼에도 유산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모든 원인이 나의 자궁에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밤마다 대리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굉장히 절망적이었고, 또 대리모에 진심이었다.


되게 신기한 것은, 나의 모든 촉이 임신으로 향해 있는 그때, 내가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길을 걷든, 내 주위에 온통 임산부만 보였다는 것이다. 세상에 임산부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 많던 임산부를 나는 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가 싶을 정도로.. 아니면 내가 지금 너무 임신이 하고 싶어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가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병원을 옮겨 2013년 3월 경, 다시 임신을 했다. 그런데 7주 경에 생리가 시작됐다. 화학적 유산을 한 것이다. 그때의 감정은.. 음.. 표현을 못하겠네... 그냥 모든 것이 검정색이었다고 해야 하나.. 슬픔 분노 상실감 이런 것을 떠나, 모든 감정이 다 없어져버린 느낌. 그래서 모두가 검은색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나의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 온통 흑색이었다.


나는 임신은 무지하게 잘됐다.. 옷깃만 스쳐도 임신.. 내 손과 발 그리고 몸이 보일러처럼 따뜻한데, 분명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몸이 예민해서 그런지, 임신한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심지어 처음 임신을 했을 때에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이 느껴졌더랬다. 그날 새벽에 뱃속이 화~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어? 배가 왜 이렇게 환~하지? 이거 뭐야?' 하다가 '아 지금 수정 중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말을 믿는 이는 한 명도 없다 -_- 다들 허풍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날 아침 로버트를 보자마자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나의 신기한 경험을 막 떠들어댔다.


"나 임신했어.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는 걸 느꼈다구. 그것 때문에 새벽에 깼잖아~ 불이 탁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니까. 나 100프로 임신임!!"


나의 이런 오두방정을 로버트는 '쟤 또 러는군~' 하며 넘겼고, 엄마는 입방정 떨지 말라고 나를 혼냈더랬다. 근데 정말 임신이었다. 그리고 유산. 두 번째도 그랬다. "나 임신했어. 조심해야지" 근데 또 유산.. 세 번째도 그랬다. 근데 또 유산... ㅠ_ㅠ


세 번째 유산을 하면 병원에서는 대부분 습관성 유산 검사를 권유한다. 그러나 로버트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갖고 싶다고 하며 모든 화학적 또는 물리적인 방법을 거부했다. 그리고 말했다.


"애가 안 생기면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되니까 너무 고생하지 말자."


...


그때 그의 말이 되게 거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고마웠다. 

반복되는 유산은 이렇듯, 나를 양가감정으로 내몰았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을 느끼는 포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