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찾아온 둥이
'아이 또한 인연임을 알았다.'
2012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예민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임신에 집착하며 근 1년을 살았다. 나도 힘들었지만, 로버트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변죽을 다 받아줘야 했으니.. 지친 우리는 결국 임신 시도를 잠시 멈추고, 6월 말부터 6주간 독일에 가기로 결정하며, 5월 초에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5월 12일.
그는 일을 가기 위해 옷을 입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던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별생각 없이 머리를 감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갑자기 이유도 알 수 없는 소름이 온몸에 일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내 심장에서, 내 온몸에서 뭐랄까.. 엄청한 소리가 들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소리가 아닌, 진동이 울렸다는 게 맞는 말일 거 같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세포 하나하나가 흔들리며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랄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준비됐다. 아이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라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음성이었다. 그냥 온몸에 감동이 일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이번에는 시도를 꼭 해야 한다는 강한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 즉시 물기도 닦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나와, 차분하게 로버트에게 다가갔다.
"내 말 무시하지 말고 들어줘. 방금 아이가 준비됐다는 음성이 들렸어. 우리 이번에 시도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 내일 배란일이니 꼭 시도하자. 제발 나를 믿어줘"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말이었을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진지했고, 또 믿음으로 꽉 차 있었다. 믿기도 힘든 이야기를 들은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임신하면 독일 안 간다고 할 거잖아. 그리고 혹시 간다고 해도 예민해져서 나를 힘들게 할게 분명해. 우리 비행기표 샀잖아. 9월부터 시도하자. 지금은 아니야. 나는 절대 안 할 거야."
다시 차분하게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약속할게. 이번에 임신을 한다고 해도 독일에는 무조건 갈 거야. 그리고 예민하게 굴지 않을게. 나를 믿어봐."
...
그렇게 둥이들이 나에게 왔다. 그것이 나의 육감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신비로운 존재의 음성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그 달에 임신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뭐랄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설사 5층에서 떨어진다 해도 아이가 유산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함이 있었다. 때문에 조금 기다렸다가 산부인과를 갔고, 그때 임신 6주임을 확인받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기집이 2개가 보인다며, 아마 이란성쌍둥이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7주 5일이 되던 날, 나는 로버트와 함께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쌍둥이임을 다시 한번 확인받고, 또 아기 심장이 아주 잘 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바로 다음날 우리는 독일로 떠났다. 아주 홀가분하게, 그리고 단 1%의 불안감도 없이 말이다.
이 아이들은 필시 나와 보통 인연이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그때 20kg짜리 캐리어를 끌면서 기차를 타고 독일 곳곳을 여행했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
지금 난임으로 고생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 아직 인연이 오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 아기가 인연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절대 유산이 되지 않을 거란 것도 덧붙이고 싶다. 또 이전에 유산이 됐거나, 아직 오지 않은 아이가 나의 잘못이 아닌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저 인연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아직 인연이 오지 않았음을 알고, 더 이상 눈물짓지 않으면 좋겠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르는 그 기분을 난 잘 안다. 늘 웃음 짓고 있지만 절대 괜찮지 않을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봤을 때 '그때 내가 그랬지'라며 웃음 지을 수 있을 거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