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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May 04. 2022

방랑 벽의 끝, 결혼 (17)

'짧게 스쳐 지나간, 그러나 의미 있던 두 달.'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두 달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 핑크빛 넘치는 좋은 기억, 행복한 기억, 따뜻한 기억만 있을 줄 알았건만, 사랑에는 회색빛도 존재함을 제대로 경험한 시간이었다.


 두 달간의 성과가 무얼까 생각해보면: 거의 모태솔로(ㅠ_ㅠ)였던 그리고 철벽녀였던 내가 이 사람 덕분에 드라마 또는 책으로만 보던 사랑을 직접 경험해봤다는 것. 실로 엄청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_-


 이 글만 읽는 분들이 오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덧붙이면, 나는 20대 때 나 홀로 배낭여행으로 세상의 반을 돌아다닌 용녀(勇女)이며, 황인백인흑인 등 인종 및 남녀노소를 가르지 않고 모두와 쉽게 친구가 되는 열린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뿐이랴. 미국 South Carolina의 힐튼헤드에서 잘 다니고 있던 호텔을 때려치우고, 무모하게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Mark Twain이라는 호텔에 들어가 여기 사람 안 구하냐는 얘기를 시작으로 면접을 보고 다음 날부터 그곳의 프런트 데스크 일을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덧붙여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상봉까지 15kg인 배낭을 메고 나 홀로 오른... 암튼.. 대충 여기까지만 하겠다. -_-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태솔로라는 단어에 너무 부정적인 편견을 싣지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로버트가 독일로 귀국하기 하루 전, 그에게 한국의 한상차림을 맛 보여 주고 싶었다. 하여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꽤 고가였던 한정식 집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기 전, 근처 백화점에서 그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뭐랄까, 두 달 동안 다툼도 꽤 했기에 오히려 정이 더 많이 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밥만 먹여서 보내고 싶지 않은 느낌.. 그냥 나를 뭔가로 추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뭐를 살까 생각하다 많이 해진 그의 지갑이 떠올랐다. '그래 지갑이라면 항상 들고 다닐 테고, 또 오래 쓸 수 있으니 이거다' 싶었다. 지갑 안에 편지도 고, 싱가포르 돈과 행운의 2달러 짜리 넣어 예쁘게 포장을 했다.


여전히 그의 지갑에 들어있는 3장

 깔끔한 종이백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선물을 들고 온 나를 보고 그가 물었다.


 "이건 뭐야?"

 "응 내일 친한 동료가 생일이라 오는 길에 그 친구 선물을 샀어~"


 내가 한 말을 철떡 같이 믿는 그를 보고 속이기 음청 쉬운 사람이구만 싶었다. 솔직히 약간 모자란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큰 상에 한치의 틈도 없이 놓인 반찬과 주 메뉴를 보고 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살짝 어두운 표정도 보였다. 이 많은 것을 어찌 다 먹냐는 걱정이었으리. 그때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생각해보면 한상차림의 음식의 반은 쓰레기통으로 가는 게 사실이다.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늘 한다. ㅠ_ㅠ


 한국 음식에 대한 서사와 자랑을 하며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그에게 준비해온 선물을 줬다. 토끼눈이 되어 폭풍 감동을 하는 그를 보고, 진짜 속이기 쉽구나. 그는 순진한 것인가, 모자란 것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더랬다. -_-


...



 어느덧 즐거웠던 두 달이 흘러 헤어지는 날이 왔다. 퇴근 후 그를 공항까지 배웅했다.


지나간 시간은 늘 '찰나'다. 1년이건, 10년이건, 그리고 40년이건, 이미 흘러버린 시간은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아주 짧은 찰나. 그 두 달은 더 그랬던 것 같다. 많은 감정과 경험 인상 추억 등을 남겼지만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간 찰나였고, 그래서 더 소중했고, 더 아쉬웠다.



 그를 보내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우린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하는 아쉬움? 슬픔? 등의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이 인연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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