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79억 명 지구인 중 하나
하얀 상자 속에 사는 지구인이야
아침이면 넌
청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걸치고
하얀 운동화에 발을 넣고
회색 상자 속으로 들어가
키보드를 두드리지
다른 수억 명의 지구인처람.
6시가 되면
회색 상자에서 나와
하얀 상자 속으로
돌아와
걸쳤던 것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충전을 시작해
100% 충전이 되면
넌 회색 상자 속에서
있었던 일은
이미 잊어 버렸지
새벽이 되면
하얀 상자 속에서
완전하고 온전한 너로 돌아오지
어느 새벽,
'난 외계인이야'라고 외쳤지만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없었지
다들 또 내일
회색 상자로 가야 하니까
하지만 너만은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흘깃 바라봐 주었어
넌 작고 연약해 보여도
네 안에 강한 심지가 있어
예쁜 색의 심지라
너라는 지구인을 기억해
너만의 규칙이 있고
너만의 관계를 꿈꾸고
너만의 옳고 그름이 있어
그래서 너를 기억해
넌 오리가 머리를 물속에 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올리면
그걸 보며 행복해하지
그래서 너를 기억해
지렁이가 땡볕에 꿈틀대면
막대기로 집어 흙 속으로 밀어주지
그래서 너를 기억해
넌 79억 명 사람들과 똑같으면서도
아주 조금 달라
그래서 너는 많이 달라
하얀 상자에 사는 너는 지구인
이제 일어날 때야
회색 상자로 갈 시간이야
얼른 청바지와 회색티를 입고
하얀 신발을 신어
그게 내가 아는 지구의 법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