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3
20250425
누군가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특징을 나열하다 보면 흑심은 사그라들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사랑’을 인간화하면 이 사람이 되지 않을까?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난 햄비언니는 소그룹을 이끌던 리더였다. 본전공 디지털미디어학과를 버거워하고, 연계전공인 문예창작과에 큰 흥미를 보였다. 정세랑, 김초엽, 김애란 작가와 같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꼭 지니고 다녔다. 혼탁한 사회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작가님들의 시선이 언니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자기계발서만 읽던 내가 소설을 읽겠다 다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고 느끼며, 감탄하고 추천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언젠가 언니처럼 나만의 관점으로 소설을 평할 날이 오길 고대했다.
당시 언니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겠다며 휴학했다. 집안 사정으로 공부보다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알바 하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나 포함 두 명의 멤버로 구성된 소그룹을 위해 왕복 2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소그룹 시간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각기 다른 대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눈빛을 보냈다. 언니의 경청은 심히 따뜻했다. 묵묵히 듣다가 한 마디 덧붙이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반응이 좋았다. 언니는 이따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화를 토해냈는데, 불합리함을 당하거나 보았을 때였다. 그의 화는 우리를 어둑하게 하지 않았다. 답답한 현실에 숨 쉴 구멍을 뚫어주는 것마냥 통쾌했다.
언니는 자주 웃고, 자주 화났다. 가끔은 눈물을 흘렸다. 먹는 걸 좋아했다. 음식 얘기만 하면, 들떠서 마치 음식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했다. 언니의 자취방에 초대받은 날,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에 할머니집에 온 듯한 따뜻함을 느꼈다. 감바스, 파스타, 샐러드, 떡볶이, 아이스크림, 차… 음식의 조합을 생각해 넉넉히 준비해 둔 것들이 언니의 마음 같았다. 차까지 마시니 몸이 노곤해졌다. 주황빛이 닿는 침대에 퐁당 누워 버린다. 배부르고.. 따뜻하고.. 든든한 언니들이 옆에 있고.. 그때 나는 그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언니는 내게 ‘핸내’라는 별칭을 지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별 의미 없이 본명 ‘한나’에 모음 ‘ㅣ’를 두 번 붙인 이름이다. 다정하고도 살갑게 “핸내~”라고 불리는 게 좋았다. 여전히 그 사랑 안에 머물고 싶어 핸내로 살아가고 있다. 당시 우리는 사랑 없이는 함께하기 어려운 집단에서 부대꼈다.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고 싶어 했다. 나와 너, 우리의 연약함을 끌어안고자 했다. 그런 공동체의 대표를 맡은 햄비언니는 혼자서 짐을 지고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손길로 함께 세워지는 대표였다. 지치고 힘든 모습, 즐거운 모습을 공동체에 잘 드러내 주었다. 그 덕에 언니의 속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속마음을 알기 위해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파도 타는 언니의 감정에 올라타 함께 헤엄치다 내려오면 되었다. 서툰 그의 일상이 위로가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언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느덧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 촬영현장을 경험했고, 이후엔 영화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마음 먹으면 하는 사람. 졸업하고 우리는 끽해봐야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그때마다 언니는 변함없이 사회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에피소드를 한가득 쌓아 왔다. 그럼에도 굳센 기세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언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넘겨보는 듯했다.
언니를 통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구체적인 얼굴로 다가왔다. 기꺼이 사랑 해보겠다고 모인 이들과 함께한 4년, 그 안에서 누린 햄비언니의 온기. 시간은 흘러 흘러 이젠 기억마저 흐릿하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혐오와 차별로 물든 사회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단련되어 갔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갈 곳은 모양새가 달랐다. 각자도생, 자기 한 몸 먹이기 바쁜 세상. 아-주 느리게 변하는 사회였다.
돈과 지위, 권력에 눈먼 사람들이 자기 몫을 늘려 간다. 애꿎은 생명이 불타고 땅속 깊은 곳에 빠져 죽는다. 와중에 나는 소시민으로서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내 무기력 해진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점차 비슷한 사람만 주변에 남는다. 한해한해 나이를 먹으며 나는 더 자랐다고 할 수 있을까. 잊히는 기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공동체 안에서 보낸 시간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 같아, 헛헛함 마저 든다.
단단한 심지로 세상을 환하게 바꿔 놓을 것 같던 언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실을 너무 세차게 맛보진 않았을까.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어쩌지. 언니의 굳센 기세가 꺾이지 않길, 여전히 꿈을 좇아 살아가길 바랐다. 오랜만에 연락을 남긴다. “언니, 잘 지내요?” 답장이 왔다. “항상 보고픈 핸내” 뻣뻣하던 심장이 말랑말랑해진다. 나를 안심하게 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서툴던 시절, 공동체 안에서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던 날들이 여전히 내 안에 흐르고 있다. 특히나 삶이 찌그러진 것 같을 때, 더 세차게 흐른다. 아니, 흘러야만 한다. 그때의 마음으로 나의 많은 부분을 용납하고 있으니, 사랑하고 있으니.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헛되지 않다.”*
더.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 김멜라 작가님의 소설 ‘제 꿈 꾸세요’ p.340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