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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살이 3년차, 의미를 묻는 시간

에세이#4

by 핸내

20250620


곡성에 내려온 지 3년 차, 일주일에 한 번씩 무기력감에 젖어 든다. 생각이 끝없이 펼쳐져 잠을 이루기 어려운 밤이다. SNS에 들어가 별 도움 안 되는 피드만 스크롤 해 본다. 뇌는 폰에 절여진 채 손가락만 까딱인다. 그러다 문득 ‘시골에서 행하는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고 묻는다. 이 질문이 시작되면 끝도 없는 우물을 파고든다. 결국 ‘곡성이 나랑 잘 안 맞나?’라는 의문과 함께, 본가인 제주로 훌쩍 떠나는 상상을 한다.


곡성에 오기 전, 대학시절 내내 서울에 살았다. 여름이면 풀 한 포기 없이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바닥, 일과 자기계발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시위 현장,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뜨겁게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 온도에 익숙해진 줄도 모르고 살다가, 방학 때 제주에 내려가면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한가로워도 될까.


도시의 불빛, 소음, 사람을 견딜 수 없을 즈음 곡성에 내려왔다. 이곳에 오기로 결심했을 당시, 첫 직장을 얻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족되는 반면, 겉만 꾸며내는 형식적인 일에 지쳐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오면 진이 빠져 밥을 챙겨 먹기 어려웠다. 해결하지 못한 일이 아른거려 밤에도, 주말에도 편히 쉬지 못했다. 그때부터 대안적인 삶을 갈망하게 된다. 일로 하루를 다 흘려보내지 않고,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삶.


탐색 첫 시도는 곡성이었다. 이곳에는 생태적으로 농사지으며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청년들이 있다. 취업 전 만났던, 지금은 이웃이 된 마을 친구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였기에 이곳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농사와 생활기술을 배우는 한해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마을 안에서 관계를 맺어 나갔다. 일 년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예상에 없던 농사를 짓게 된다. 먹거리 생태계, 흙과 미생물의 세계를 알아가며 농사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세계가 확장된다. 농사를 더 지어보기로 결심하고 곡성에 정착했다.


농사에 익숙한 몸은 따로 있던 걸까. 먹기 위한 농사는 나를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농사 앞에만 서면 자신감이 움츠러들었다. 곡성살이 2년차, ‘이게 맞나?’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시기이자, 인생에서 가장 불확실한 시기였다. 반면, 밭에서 나오는 제철 식재료로 꼬박꼬박 잘 챙겨 먹던 시절이었다. 그게 행복인 줄도 모르고 흘려보냈다.


농사로 자아실현 하기엔 그다지 뜻이 없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마을에서 살아가는 건 좋았다. 이웃들과 우연히 만나 산책하고 먹을 것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는 돌봄이 따뜻했다. 사실 이곳을 떠난다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막 조급해졌다. 팔리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못 쓰겠고, 마음의 여유는 사라져 요가의 자세로 삶을 대하기 어려웠다.


잠 시간과 밥시간을 줄여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현대인들. 한편 8시간은 충분히 자고,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나. 열정을 쏟는 무언가 없이 그저 시간을 어디론가 흘려보내는 생활이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진다. 왜 먹지, 왜 일하지, 왜 농사짓지. 꽉꽉 채워지지 않은 삶에선 이런 질문들이 더 잘 떠오른다. 의미를 찾다 보니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상태에 이른다.


‘시골에서 하는 행위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삶에 관한 질문이다. 빠르게 달려가고자 하는 나를 멈춰 세워 회고하게 한다. 현존,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당장의 결과는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혹, 쌓이지 않으면 어떠한가.


때로는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우선 몸을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 이 글이 말해준다. 나는 지금, 나로 가득 차 있다고. 좁아진 시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어려울 수 있는 상태다. 어쩌면 인생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질문을 품은 채 유예되는 시간일지 모른다. 그러니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한가로이 밤 산책을 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아야겠다. 반딧불이를 발견하는 기쁨을 그저 누리는 하루를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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