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던 당신이 홀로 심었던 고독의 씨앗
빈옷장 (아니에르노) | 1984books
"잘 왔어요.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래 전, [탐닉]이라는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나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 그냥 덮었던 작가 아니 에르노.
최근에 신유진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게 되지 않았다면 그녀와의 만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이 도착한 날엔,
그녀의 글을 시작할 때 내가 느낄 마음이 '같은 세계 사람이다'하는 친밀함은 아닐 것을 알았으므로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선입견 없이, 편견없이 들어볼게요.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들려 줄게요." 하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63페이지 즈음 와서 그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게 되었구나.
규율과 질서, 도리와 배려를 교정하듯 배운 적이 없는 그녀가
처음 다른 세계로 나가 만나는 충돌은 그랬구나.
스무 살에 낙태 수술을 하며 시작 된 이야기가 그녀의 과거로 내달리고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 조각들을 따라가면서 '지금 당신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의도를 헤아리며 읽어가다가
만난 장면이 지금 여기이다.
학교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세계라 아이를 존중하지 못했고
가족이 속한 동네는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섬세히 들여다보는 성품을 타고 난 아이의 내면이
고독의 씨앗을 심고 있었나..
이제 홀로 가져갈 고독이 시작 되겠지.
경계 안의 가족도, 경계 밖의 학교도 자매도 친구도 공감해주지 못할 마음들.
그것을 껴안고 걸어갈 시간이 만든 고독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구나.
빈옷장을 써내려간 아니 에르노의 집은 어디였을까?
자신의 분명한 마음과 규칙이 어떤 섬세한 내면을 가진 이에겐 폭력보다 강한 흔적을 남기는 이야기들은
너무 흔하고, 흔한 만큼 무섭기도.. .
진지하게 흘려듣지 않는 것만이 내가 건낼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다.
#빈옷장 #아니에르노 #신유진 #1984books .
다른 여자애들은 등을 돌리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웃음, 행복, 갑자기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
알겠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은데, 왜 나는 저 아이들과 달라야 하는가,
배에 단단한 돌덩이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눈물 때문에 눈이 따갑다.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이것은 모욕이다.
학교에서 나는 모욕을 배웠고, 모욕을 느꼈다.
분명 내가 느끼지 못하고, 주의하지 못하고, 놓쳤던 것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과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이 내 부모와 다르게 말한다는 것을 이내 알아버렸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있었다.
<<학생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노크를 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시나요?>>
라고 말할 때, 나는 그녀가 완전히 낯선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뒤를 떠다니는 나의 전사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내 부모는 나의 전사를 닮아야 했을까, 그랬다면 쉬웠을 텐데.
모든 문제는 그들이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니 선생님은 늘 빗나갈 수 밖에. p.6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