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영롱한 빛깔을 나는 보고있어. 그러니부끄러워하지마

아니 에르노 빈 옷장,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 내 이름은 루시바턴

by 해나책장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바턴]과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소설이다.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상처가 그 아이의 평생을 따라 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 놓는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아름답고 슬프게 이야기 한다.

루시가 가진 부끄러움과 수치심, 잘못이 없음에도 가지게 되는 죄책감과 열등감은 그녀가 뉴욕에서 작가로 성공하고 중산층의 삶을 가지게 된 이후에도 내내 따라다닌다.
그래서 루시는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직감적으로 이해한다.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의 드니즈 르쉬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루시를 내내 생각했다.
어떤 시간을 견뎌낸건지....학창 시절을 견뎌내는 동안, 홀로 낙태를 결심하고 감행한 후에도 그녀가 가진 고독은 가슴이 아파 숨이막힐 지경이다.

그녀의 집은 어디일까...읽다 말고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우리의 어린 시절은 무엇을 남겼는가.

각자가 가진 어떤 흔적이 각자의 고독의 씨앗을 심게 하고 그래서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을 통과해오면서도 이렇게 누군가의 고독에 공감하게 되는 걸지도.

루시바턴을 읽을 때처럼,
아니 에르노를 읽으며 나는 말할 수밖에 없다.

"너의 영롱한 빛깔을 나는 보고 있어. 너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적나라한 성적 묘사에 자유로운 작가라 생각해 아니 에르노를 놓칠뻔했구나.
이제야 당신을 만났다고, 당신을 알아가고 있다고, 조금 더 듣고싶다고 말을 건넨다.





사립학교 여자애들의 여유로움, 편안함 앞에서 나 자신이 무겁고 끈적끈적하다고 느꼈다.
나는 어머니가 4월 중순에 입혀 주신 커다란 니트 조끼를 벗어 던졌다.
그것이 나의 무거움, 나의 상스러움을 벗어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잔느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외의 모든 것들, 그 애를 둘러싼 것들, 우아함, 보이지 않는 타고난 어떤 것들이 부족했다.
뿔테 안경, 분홍색테 안경을 파는 반짝이는 상점, 거실, 식로, 그러나 그것들 사이에 있는 여러 관계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벼움, 경쾌한 조소가 순수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나 녹색 식물이 있는 현관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끔찍한 점이다.
나는 이미 결정지어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문 밖에 진짜 세상을 두고 온 나는
학교라는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p.70

빈 옷장 (아니 에르노) | 1984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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