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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의 사랑과 인생의 여정

feat. 스토너 (존윌리엄스)

by 해나책장



스토너의 사랑과 인생의 여정

스토너 초판본이 출간되어 오랜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았고, 외울 만큼 익숙한 문장들임에도 다시 밑줄을 긋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걸까?
문득 궁금했다. 언제나 "제일 좋아하는 책"을 묻는 질문에 단박에 "스토너"라고 말할 만큼 애정을 양껏 드러낸 책이다.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아마도 스토너가 사랑하는 방식을 좋아했을 것이다.
스토너를 읽다 보면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그 일렬의 과정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가 농업대학에 가게 되고,
영문학에 매료되어 부모의 기대를 배반하며 자신의 의지로 영문학을 선택하고,
사랑을 몰라서 사랑이라 확신했던 아내 이디스와의 결혼이 실패라는 것을 결혼 한 달만에 깨달았지만,
예민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아내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학문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선물처럼 온 딸 그레이스를 키우며 위로와 안정을 잔잔하게 느끼며 그는 일상을 이어간다.

그런 그가 내겐 작은 등불 같은 날들이 있었다.
자신과 결이 다른 세상에 반격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키우며 고요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과 나의 처지를 동일시하며 나는 견뎌야만 하던 시절을 견뎌냈더랬다.

자신의 분신 같은 딸 그레이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동안 아이는 스토너의 눈앞에서 자라난다. 아이의 얼굴에 그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문득 스토너는 직감하게 된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가 될 거라는 것과 자신이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스토너의 세상은 변한다.
내면이 단단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이 된다.
그렇게 중심이 선 사람의 아우라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세계관이 단단해진 것이다.

사랑을 향해 스토너가 나아간 여정은 사랑을 찾아가는 인생 같았다.

역경도 인간관계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세상을 가진 사람
나만의 것,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정직한 세계.
그런 세계를 가졌던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며 슬픔 속에서도 위안을 얻는다.

그는 훼손할 수 없는 견고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나에게 스토너는 '사랑의 여정을 따라가는 성장 소설'이었나 보다. 대가 없이 순수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그의 사랑의 방식이 내겐 위안이었다.

이 소설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어서 스토너가 이디스를 만나 사랑에 빠질 때도, 그레이스를 키우며 사무치는 감동을 느낄 때도, 진실된 사랑 캐서린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을 때도 내내 그의 방패막이 같은 마음으로 다음의 위기를 대비하며 읽는다.

학문을 향한 사랑, 아이를 향한 사랑, 영혼의 메이트를 향한 사랑. 스토너가 사랑을 향해 나아가고 변해가는 모든 여정은 내게 용기로 돌아온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스토너를 마음 깊이 사랑한다.




그의 말투에 자신감이 붙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엄격함이 힘을 얻었다.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p.158

#스토너 #존윌리엄스 #영미소설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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