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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등불같은 소설

줄리아나 도쿄 (한정현) | 스위밍꿀

by 해나책장

하얀 눈과

서늘하고 깨끗한 공기

그리고 서점

마주 앉아 천천히 함께 먹는 식사

서로에게 온전하게 집중한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줄리아나 도쿄 한 편의 배경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중심에는 어떤 선택과 결정,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단상이 있다.


이 좋은 소설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줄리아나 도쿄는 정말 따뜻한 소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IO2p-ua9o





구성


1. 책의 줄거리

2. 줄리아나 도쿄의 인물들

3. 줄리아나 도쿄의 의미

4. 책을 읽으며 중요하게 여겨졌던 포인트

5. 줄리아나 도쿄에서 당신은 주인공입니다




| 책의 줄거리



애인의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충격으로 모국어를 잃은 '외국어 증후군'을 앓게 된 한주는

새로운 삶을 위해 도쿄에 가서 서점에서 일하다 유키노라는 성소수자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유키노와 한주는 각자의 삶에서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서로를 통해 위로받고

사랑의 언어와 건강한 일상을 배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노가 사라지고 실종 신고를 한 한주는 일 년 후 경찰의 연락을 받게 된다.

부산의 어느 호텔에서 살인미수 피의자로 체포되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유키노.

그는 계속해서 줄리아나 도쿄와 정추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유키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줄리아나 도쿄와 정추의 의미는 무엇일까?


| 줄리아나 도쿄의 인물들


줄리아나 도쿄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도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한주,

미혼모의 아들이자 게이인 유키노,

그리고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과 전공투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김추.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머리를 땋는 것처럼 하나의 소설이 완성된다.


한주는 대학원에서 70-90년대 노동자들의 수기와 소설에 마음을 빼앗긴다.

농촌에서 올라와 공장에 취직했다가 임금이 너무 낮아서

성매매를 겸했다는 여성들의 이야기.

한주는 국가와 남성들의 폭력에 희생된 여성 노동자들의 꿈이 한결같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는 것이었음을 보며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애인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었던 그녀 역시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낼 힘이 스스로에게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주는 부산의 어느 호텔에서 애인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후

깨어나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언어와 삶을 도쿄에서 다시 배워간다.

한주는 다시 한국어를 배우면 "아니요. 싫습니다. 안 하고 싶습니다." 같은 말을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 단호히 뱉을 수 있도록 연습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긴자의 서점에서 유키노를 만나 함께 살게 되는 한주.

한주는 유키노와 생활하며 사랑의 언어와 건강한 일상을 배워간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말하는 법을,

마음을 주고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늦더라도 한 걸음씩 정확히 내딛고 온전하게 통과하는 마음으로 길을 건너는 법을,

식탁에서 행복한 한 끼를 넉넉하고 천천히 먹는 법을.

유키노와 함께, 서로를 통해 배워간다.


유키노는 성소수자이자 미혼모인 엄마를 둔 일본인이다.

유키노의 엄마는 줄리아나 도쿄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미군의 폭력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클래식을 듣던 여인이었다.

그녀가 우연히 만나게 된 한국인 음악가 정추의 앨범은 그녀의 깊은 위안이다.

그녀는 줄리아나 도쿄의 화장실에서 갓난 아기인 유키노를 만난다.

유키노를 안고 단상에 오른 그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주인공이 된다.

유키노는 소중한 엄마와 한주를 지키기

애인의 비상식적이고 잔인한 폭력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유키노는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진, 작은 이기심도 없었던 따뜻한 인물이다.

성소수자로서의 삶과 애인의 폭력 속에서 그 무게감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그에게

한주는 등불 같은 위로가 되어 준다.

한주와 유키노는 서로에게 그런 위로가 되어준 거다.

하얀 눈이 배경이 되는 소설 속에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 등불처럼 꺼지지 않고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이 소설을 끝까지 밝히며 걸어가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인 김추는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과 전공투'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인물이다.

이 논문을 발표하는 학회에서 한주를 만나 메일을 주고받게 된다.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처럼 등장하지만 이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엄마는 한국에 유학 왔을 때 대성물산 노동자인 아버지를 만난다.

칼과 함께 길에 버려진 김추를 그의 엄마가 미혼모로 키우게 된다.

김추에게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과 전공투'라는 논문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시위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 아버지, 그 시위 현장에도 계급성이 존재했다.

그리고 미혼모로 김추를 키우며 아이를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혼모의 자녀임을 숨기고 생활했던 모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가는 김추를 통해 그 시절의 인물들을 단상에 세워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추는 낮 동안 작업복이나 유니폼 차림으로 제도 안의 노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밤이 되면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 위에 올라가

화려한 의상에 커다란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여성들을 상상해보았다.

그쯤에서 추는 자신이 생각했던 무대의 의미를 구체화해보기로 했다.

그의 생각에 그것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며 의지이다.

줄리아나 도쿄에만 있었다는 그 특별한 무대, 높은 단상에 오른 이들은

바로 그 순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직 순수한 나로만 존재하는 느낌말이다.

적어도 그 단상 위에서만큼은 그전까지 감내했던

수많은 사회적 요구들이 완전히 지워졌을 것이다.' p.202



| 줄리아나 도쿄의 의미



1_줄리아나 도쿄.png


이 소설의 제목 줄리아나 도쿄는 1991-1994년 사이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클럽의 이름이다.

이 줄리아나 도쿄는 일반 무대보다 높은 단상으로 유명했다.

여성들은 이 단상 위에서 춤을 출 때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이 줄리아나 도쿄는

여성들의 치마 속을 촬영하는 남성들이 생겨나며 문을 닫게 된다.

그리고 이 즈음 버블경제로 인해 인근 지역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고

줄리아나 도쿄에 춤을 추러 오는 손님들은 이 공장의 여직원들이 많았던 것도 줄리아나 도쿄가 문을 닫는 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변화와 남성들의 시선처럼 외부적인 압력들로 인해

줄리아나 도쿄는 그렇게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단상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순간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치이다.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과 김추가 논문을 발표하던 학회에서의 단상은

동일한 의미가 아닐까.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에 오른 것, 그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 책을 읽으며 중요하게 여겨졌던 포인트



줄리아나 도쿄 목업 5.png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하게 여겨졌던 부분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사회적, 성적 폭력성 등 외부의 힘에 의해 고통받는 여성들

둘째, 노동자, 성 접대 여성, 미혼모의 자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 느끼는 고립감

셋째,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 그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인물들

넷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한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다섯 째, 소외되고 아팠던 인물들을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으로 만들어가는 작가의 마음



남성 중심의 폭력성 속에서 자신을 잃은 사람의 무력함,

미혼모와 그 자녀가 사회에서 받는 멸시, 성소수자의 고립감,

80년대 노동자들의 밟혀진 인권과 전공투 속에도 도사리고 있었던 계급성.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그 일들을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쓰듯 소설 속에 녹여내며

인물들을 줄리아나 도쿄 단상에 세우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계속 해결되지 않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한주와 유키노는 그들의 폭력적인 애인에게 벗어나지 못했을까,

왜 유키노의 엄마는 폭력과 매춘의 지옥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까.

왜 자신을 무겁게 억누르고 고통스럽게 하는 대상으로부터

자기 의지로 걸어 나오지 못했을까.



이 책을 정리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건 제가 가스라이팅을 글로 배웠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실 속에서 서서히 무력하게 짓밟히고 훼손되는 마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알지 못했던 거다.

그걸 이해하게 되면서 정말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 서로가 서로의 등불 같았다.



정신적으로 무력하게 무너질 것 같은 나를 누군가 최선을 다해 지켜주고 사랑해 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 인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걸 생각할수록 이 책이 더욱 감동 깊고 아프게 다가왔다.



| 줄리아나 도쿄에서 당신은 주인공입니다.


이 책의 말미에 오키나와 섬의 고무나무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키나와는 고무나무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대.'

'섬을 지켜주는 것처럼?'

'응, 뿌리가 얽혀 있어서 태풍으로부터 오키나와를 지켜주었대. 근사하지?'

'뿌리가 얽혀 있으면.'

'응'

'이 끝에 있는 나무와 저 끝에 있는 나무가 서로 보지는 못해도.'

'서로를 지켜주고 있겠지.'

'그렇구나.'

'그렇지.' p.256



뿌리가 얽혀 태풍으로부터 오키나와를 지켜주는 고무나무들.

이 끝에 있는 나무와 저 끝에 있는 나무는 서로를 보지 못해도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저는 이 줄리아나 도쿄라는 소설이 오키나와의 고무나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서로 보지 못해도 서로를 지키려는 등장인물들의 의지가

이 소설의 어두운 배경을 밝히는 등불 같은 역할을 하니까.



모국어를 잃은 한주가 유키노를 만나 서로를 통해 사랑의 언어를 배워갈 때,

긴 시간 공들여 준비해온 논문을 발표한 순간

한주의 질문을 통해 이해받고 있다는 위로를 받은 김추의 마음을 들었을 때,

이 모든 시간을 지나 유키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신호등을 건너는

한주의 뒷모습의 단단함을 마주할 때

저는 줄리아나 도쿄의 단상에 서 있는 인물들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해나의 한 줄 요약 :

줄리아나 도쿄에서 당신은 주인공입니다.


2_줄리아나 도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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