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어크로스) 해나책장 북리뷰

나에게서 남으로 한발 내디뎌 세상과 만난 기록

by 해나책장

"우리에게 삶을 담아낼 어휘는 항상 모자라고

삶은 언제나 말보다 크다." (작가의 말 중) p.8


사람을 만나면 언어가 다가온다.

그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세계를 읽는다.

들어야 할 말을 잘 들으면 해야 할 말이 생긴다.

해야 할 말을 잘 말하면 나의 서툰 언어도

누군가에겐 위로와 용기로 새겨진다.


타인의 입장에 서는 일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동안은 성급한 추측과 단정,

존재의 생략과 차별에 대한 예민성을 기를 수가 있다고,

은유 작가의 말이 내게로 온 날,

나는 내가 타인에게 들어야 할 말들이 무엇인지

읽어야 할 세계가 어떤 풍경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아야 할까.

어떤 풍경을 마음에 채우고 있는가,

그 풍경은 세상과 당신에게 어떻게 영향 하는가."


나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갔다.

읽을수록 무언가에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내가 추구해야 할 성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는 내가 모르는 척박한 환경들과

역경 속에서 성숙해 간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을 겸손한 관점으로 응시하는

은유 작가의 성숙한 마음과 따뜻한 문장이 있다.

대체로 그들은 배제되어 있었다.

세상의 보편성, 합리성, 효율성이라는 말 앞에 그들의 아픔은 배제되었다.

이 단어들이 이성과 논리라는 말과 잘못 합쳐질 때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확신을 가질 위험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좁은 관점과 경험으로 세상을 단정하는 것은 일종의 무지이며

무지는 누군가에게 폭력 같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어가는 동안

무언가에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결심을 한다.


이 책은 다섯 챕터로 구성된다.

나를 들여다보고, 우리를 들여다 보고

낯선 세계와 주변을 들여다본다.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

자기 자리에 있기에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들, 짐작한 고통들 너머에 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삶 속의 말들이 읽는 내내 다가온다.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줬다."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가슴을 친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p.117"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하는 그런 일들,

아이가 죽은 것만큼 자기를 동정하고 배제하는 누군가의 연민을

일상에서 견뎌야 하는 누군가의 마음 같은 것들을 나는 상상한 적이 없었고 잘 몰랐다.

은유 작가님의 표현처럼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자기 개발서에서 말하는 사람들을 알지만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일상이 파괴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했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배제된 말을 듣지 못했고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난 원주민들의 말은 무음 처리되는 동안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는 구조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삶이

내면에 쌓여가는 이들의 응어리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어느 날 대비하라는 전갈도 없이 불행이 찾아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그 누군가에서 우리는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겪을 수도 내 이웃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다가오는 말들 속에서 나는 경청을 배우고 말들의 의도를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말하는 법과 침묵하는 법을 배운다.

들어야 할 말을 읽어내고 감추고 싶은 속내를 감춰주는 배려를 훈련하다.


불편한 이야기들을 그만 듣고 싶어 하는 이 시대에

불황을 견뎌야 하는 출판업계에서

독자들이 받기에 편할 온도와 만듦새로 엮어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눈물과 침묵이 빚어지며 만들어낸 사람의 마음은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가오는 말들을 읽은 사람들은

그 말을 함께 믿어줄 것이다.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p.83"


https://www.youtube.com/watch?v=3GD_OfSu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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