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의 취향
https://www.youtube.com/watch?v=AHrOe5FyCV4
헤르난 바스 모험, 나의 선택
스페이스 k 서울 (마곡역 3번 출구 7분 거리)
2021. 02. 25 - 05. 27 (전시 종료)
"압도적인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을 읽고 싶어 지고,
젊은 작가의 상상력과 모험심에 용기를 얻게 되는 전시"
쿠바계 회화 작가 헤르난 바스의 [모험, 나의 선택]
헤르난 바스는 1978년 생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쿠바계 회화작가다.
이번 전시는 헤르난 바스의 신작 5점을 비롯하여 2017년 이후부터 최근 작업까지
주요 작품 20여 점을 전시한다.
작가는 평소 관심을 가져온 고전 문학이나 종교, 신화, 초자연주의, 영화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을 이어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생각의 흐름, 월든의 오두막집>,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뒷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린 <젊은이와 바다>에서는
너무 어려서 바다로 나갈 수 없었던 소년 마놀린이 바다로 나와 노인의 청새치를 잡아먹었던 상어를 한 순간에 제압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뉴욕의 성소수자 운동인 seat in 기사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Sit in>은 역사적인 장면을 각색하여 감각적인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나 역시 창의성을 개발하기 위해 소설, 영화 등을 많이 보기도 하고
전시회나 공연 같은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문학작품들이
작품 속에서 선명하게 구현되면서도 작가의 개성이 잘 표현되었다는 점이었다.
[모험, 나의 선택]은 헤르난 바스가 제시한 모험에 영감을 입은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각자의 모험을 꿈꾸도록 기획되었다고 한다.
성소수자이자 이민자, 경계인이었던 헤르난 바스에게
상상력과 모험심은 아마도 살아가는 힘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부동산 침체, 청년 실업 등 다들 위축되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나 역시 어려운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만큼
이 시간이 나의 모험이고 결국 견디고 일어날 나의 성장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내 본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듯 넓고 깊은 세계를 성실하게 배워가고 싶어지는 전시"
김환기 선생님(1913 - 1974)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철학을
고유의 조형 언어로 승화시킨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양 미술 중심지 파리에서 견문을 넓히고 성실하게 채워 온 영감을 통해
고유한 작업을 완성해간 김환기 선생님의 아름다운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라.'
그랜드 투어는 17-19세기 유럽에서의 청년 교육의 정점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환기 선생님이 서양 미술 중심지인 파리에서 머문 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선생님은 1956-1959년 파리로의 그랜드 투어를 통해 4년간 머물면서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작품을 보고 느끼며 자신의 예술의 세계를 돌아보고 감각을 채워나간다.
이 여정은 '파리 통신'이라는 신문 기고문을 통해 고국의 지인들과 독자들에게도 전달되었다.
파리에서의 시간은 선생님이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며
앞으로의 작업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정립해 주었다.
세계적인 예술이 되려면 자신의 본질과 고유성에서 우러나야 함을 깨닫고
항아리, 매화, 사슴, 새, 산월 같은 한국의 전통과 정서를 작품에 담았다.
내가 기획자로서 계속해서 추구해 가는 역량 중 가장 간절한 것은 '고유성'이다.
'작품에는 자신의 본질과 고유성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담겨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전시를 보는 내내 내 가슴을 울렸다.
이 전시를 보다 보면 위대한 작품에는 고유의 노래가 있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본질과 고유함을 정립하고 확장해 가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다.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에는 단순함과 깊이, 고유함이 잘 담겨있다.
나는 선생님의 작업들이 가진 이런 부분을 정말 좋아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책은 김환기 선생님의 일기와 편지들로 엮은 책이다.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한국 미술계의 미래와 후진 양성에 대한 바람,
그리고 그 시절 지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주고받았던 예술에 대한 사색들이 담겨 있다.
책 중에 파리에 떠나기 전에 딸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다.
<내 아끼는 딸에게>라는 꼭지인데 매일 그림을 대하던 선생님의 성실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너는 색감과 붓끝 재주는 있다면 있는 편이겠지.
그러나 너는 열심히 그리지를 않아.
생각나면 붓을 드는 그러한 공부 가지고는
네가 꿈꾸는 그러한 예술가는 될 수가 없어.
365일 아니 죽을 때까지 자고 새면 하루라도 팔레트에 빛깔을 짓이겨 보지 않고는
한 달이고 목욕을 못해 생리가 개운해질 수 없는 것처럼 돼버려야 한다.
날이 날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생활이 돼버려야 한단 말이다.
너는 아버지보다도 붓을 안 드니 그래서야 되나.
아버지가 떠나면 내 화실도 빌 테니 부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밤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작품 제작이 꼭 막힌다는 것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고
두뇌 빈곤에서 오는 것이니 두뇌적인 면에 적극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말해 둘 것은 우리의 도자기를 이해해야 한다.
그 포름 색 질감, 그리고 그놈이 발산하는 공간의 지배-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끼는 딸에게)' p.125
김환기 선생님이 강조했던 세 가지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나, 매일 열심히 그려라.
둘, 작업이 막히는 것은 기술이 아닌 두뇌 빈곤에서 오는 것이니 책을 많이 읽어라
셋, 우리의 도자기를 이해해라
딸에게 했던 말들은 김환기 선생님이 삶으로 본을 보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머리가 복잡해질 때 부암동에 가서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면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뭐가 중요한지, 무엇을 향해서 가야 하는지가 선명해지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 이유는 선생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작품은 내게 말한다.
허투루 하지 말고, 인정받기 위한 욕심으로 하지 말고
다만 성실하게 갈 길을 가고 할 일을 하라고.
그리고 우리의 본질과 고유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나는 선생님의 작품 앞에서 가난해도 정신적 풍요를 선택하겠다고 다짐한다.'
전시회 다녀온 날의 기록.
가난해도 정신적인 풍요를 추구하며 단순하게 더 깊고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예술가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나는 정말 행복하다.
뮤지컬 나빌레라
2021.05.14 - 05.30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나빌레라,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 준 공연"
이 작품에 주요 등장인물은 두 명이다.
채록과 덕출 할아버지.
계속되는 부상과 생활고로 꿈을 잃어버린 청년 채록.
엄마와 사별한 후 발레를 전공했던 엄마를 그리워하며 발레를 시작했고 재능도 있으나 발레를 통해 어디까지 날아오르고 싶다 하는 그런 꿈은 없다.
그리고 덕출은 치매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발레에 대한 꿈을 꾸는 할아버지이다.
나빌레라는 이 두 사람이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두 인물에게는 각자의 장벽이 있다.
채록은 생활고와 부상, 그리고 덕출 할아버지는 치매다.
너무나 큰 장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는 덕출을 보며
채록의 마음에는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어드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채록도 진지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발레에 임하기 시작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
나비효과.
덕출의 날갯짓은 채록을, 그리고 방황하고 있던 채록의 친구 성철을, 발레단 사람들을,
그리고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저와 관객들의 마음에도 태풍을 일으킨다.
내가 본 공연에서는 조형균 배우가 덕출을, 강인수 배우가 채록을 연기한다.
조형균 배우는 워낙 연기도 잘하고 호흡도 좋고 노래를 워낙 잘한다. 나에겐 '믿고 보는 조형균'이라는 기대가 있는데 역시나 좋았다.
강인수 배우는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해서 그런지 동작이 굉장히 안정적이고 춤 선이 예쁘다.
연출도 나쁘지 않았고 배우들의 춤 선도 좋고 연기도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았던 공연이었다.
이 작품을 보며 내가 집중하게 된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꿈', '시간', '노력'
발레를 온전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나는 초보자의 몸짓을 가지고 있지만 진지한 열정으로 매일매일 날아오르는 덕출 할아버지의 날갯짓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공연 내내 뭉클했다.
'나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승부욕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뭔가를 악착같이 한다는 게 불편한 사람이다.
왜냐면 인생은 길고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나를 태울 것 같은 열정으로 매일 산다는 건 지속하면 금방 지치니까.
그런데 덕출 할아버지의 시간의 개념을 보며 그 절박함을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하루와 나의 하루는 너무나 달랐겠구나,
그리고 할아버지의 하루 같은 마음으로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나의 일상도 너무 다르겠구나,
나는 매일매일 정말 최선을 다했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작품을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일상과 건강,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정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