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보뱅의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덮으며
보뱅에게.
삶의 면적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당신은 사랑, 혹은 그리움으로 가득 채운 것 같습니다.
사랑과 그리움의 성분은 깊고 맑은 탓에 당신의 글도 이와 같네요.
언제부턴가 소중한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고 있습니다.
마음의 거리가 아니라 사별을 말하는 거예요.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떠나보내며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살아있고 소멸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그게 너무 고맙고 용기가 났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좋은 기억으로 동행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일상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 서로에게 모자람 없이 충족될 수 있도록 정직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품어주고 긍정하는 일.
그럼에도 내 중심을 지켜가며 사랑하는 일. 그러할 때 한 사람이 떠난 후에도 남은 이에겐 기억이 용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움의 정원에서>의 초반부에서 깊은 슬픔 속에 잠긴 당신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말할 때는 사랑을 이야기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열정 어린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당신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어요. 가늠이 되지 않는 마음이라서요.
지슬렌을 향한 묘사를 보면 굉장히 풍부하고 아름다워요.
아마도 그 이유는 당신이 지슬렌을 홀로 짝사랑한 기간이 길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1979년 9월부터 그녀가 두 번의 결혼을 할 때까지 당신은 그녀의 곁에 머물렀지요. 16년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을 사로잡은 지슬렌의 모습은 눈부셨습니다.
"순수한 그대로의 천재"
"귀염둥이, 늦둥이, 넷째이자 막내.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모든 행동과 결정을 긍정하고, 그녀는 세상을 향해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죠."
자유로움과 경쾌함, 그리고 쾌활하고 환한 웃음 속에서 그녀는 삶의 모든 문제들을 거침없이 해결해갔지요.
당신은 그녀를 홀로 사랑하며 충족되지 않았던 시간의 사랑과 그녀와 함께 사랑하며 깊어져 간 시간이 합쳐져 더 섬세하게 깊어진 마음을 만날 수 있었나 봐요.
당신은 '절망, 사랑, 쾌활함이 뒤섞인 삶을 정말무결한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단어들이지요. 당신은 사랑을 통해 인생을 배웠던 셈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묘사한 지슬렌의 모습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기도 했어요.
쾌활하고, 아이의 시선에 맞추어 그림을 걸어주고, 슬픔과 불행을 모른 채 하지 않되 빨리 털어버리고, 삶에서 만나는 이들을 유쾌하게 나의 삶 속으로 초대하는 그런 경쾌함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두 사람의 산책이었어요.
그녀는 아주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겨우 5분의 시간을 당신과 산책했지요.
너무 짧지 않냐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당신은 "단 5분이었어도 완벽했기에 짧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밀도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었어요. 당신은 지슬렌과의 관계 속에서 이 밀도가 충분히 충족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마음을 다해 죽음 이후에도 사랑할 수 있었던 걸 테고요.
그렇게 당신은 시인의 붓을 가진 것처럼 끝없이 다채롭게 사랑을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요.
당신은 죽음, 사별에 대한 아름답고 건강한 애도의 모형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에서 서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당신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어 져요.
아름다운 애도의 연서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리움 속에서 시들어가고, 삶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기도 한다."
당신의 문장을 음미하며 당신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tM0gOqBi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