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p.225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은 경하인듯 하다 인선인듯 하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었음을 알게 된다.
눈이 내리면 죽은 사람들의 얼굴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오빠의 생존을 확인하던 날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지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뜯어먹었을 고기들이 떠올라 바닷고기를 먹지 못하고, 생과 죽음을 오가며 두 개의 시간을 살게 되는 분열된 정신.
이것이 인선의 엄마 정심의 현실이었다. 정심이 오빠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걸어온 길은 4.3 사건의 유가족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말미에서 인선은 말한다.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알았어."
책을 읽으며 이 책 속의 인물들에게서 어떤 연결점을 발견했다. 죽음을 준비하며 유서를 쓰던 경하가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폭설을 뚫고 목숨을 걸고 제주 산간 지역으로 갔던 일, 정심이 오빠의 소식이라도 알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정신적인 고통을 견디며 추적했던 일, 그리고 인선이 흔들리지 않는 성정으로 제주 4.3 사건을 추적했던 일. 경하가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프로젝트를 할 수 없겠다고 했을 때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게.'라고 흔들리지 않고 계속 나무를 모으고 혼자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던 인선의 모습.
이 모든 게 미약한 진실을 위해 전부를 걸고 달려갈 수 있는 마음, 결과를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을 말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강 작가님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리뷰를 준비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은 일이 있었다. '이 일에 대해 울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세월호, 광주, 위안부를 이야기할 때 울먹인다)
가장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가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이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잘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 그 일을 함께 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한 분, 한 분을 애도하고 연대한다.
가장 미약한 진실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나아가는 힘.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RgkecULVW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