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슬롯을 찾아서

Dancing with monsters 9

by Dolphin knows

월클 김연경 선수가 세계대회를 박살 내는 그 순간, 장미란 선수가 그 무거운 역도 바벨을 깔끔하게 들어 올리는 감격의 시간, 무엇보다 김연아 선수가 그 무겁고 불편한 칼날 달린 스케이트를 신고 높게 멀리 그것도 세 바퀴 반을 정석으로 돌아 트리플 러츠와 토룹을 해내셨을 때 난 감탄을 넘어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부 중력을 극복해냈다. 그것도 약물이나 신체 내부 기기 설치 없는 그냥 생몸으로.

나와는 너무도 달랐고, 그래서 위대해 보였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학창 시절 체육시간만 되면 스스로 뇌까리는 말이 있었다.


얏호! 얼마나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확인할 시간이 왔다!
자 가보자! 어디까지 갱신할 건가

특히 구기종목은 쥐약이었다. 그렇게 난 스포츠 직관이나 룰에 관심 1도 없는 아이로 자랐고 십 대 시절 남들이 농구, 축구, 야구 선수를 응원할 때 나는 그쪽은 쳐다도 안봤다. 그저 구석에서 죽거나 백발성성하거나 나이 좀 먹은 서양 작곡가나 연주자들의 음악, 또는 글자를 파댔다.

성인이 되어 누가 날 야구 직관에 몇 번 끌고 간 적 있는데 정말 노잼이고 시끄럽기만 해서 그냥 치킨만 씹어댔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들도 죄가 없고 야구도 죄가 없다.

뭐 키도 작고 그러니 일단 뭐 딱 보기에도 멋이 없었고

달리기도 던지기도 못하는 못난 체력과 운동신경만으로는 모자랐는지 툭하면 체하고 편두통에 시달리고, 잔병치레에 예민한 신경까지 아주 골고루 갖춘 아이는 그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몸을 개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만이 답이다'

다칠 게 뻔하고 툭하면 병에 걸리고 하는 생 몸보다는 몇 번 부서져도 수리가 가능한 의체로 사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괴물 소리를 듣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려 저 쪽으로 던져버리거나

팔을 비틀어 뽑아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릴 적에 꽤 여러 번 읽었던 책이 '미생물과 바이오테크놀로지'였다. 유전공학이 주로 나와서 꽤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온갖 싸이 파이 영화들을 봤다... 사이보그나 각종 유전공학 괴수로 가득한.





내가 이모양이니 나와는 한참이나 다른 분들을 동경해왔다.

예를 들면, 수 백 년에 걸쳐 죽지도 않는 에일리언과 싸우느라 죽지도 못하는 '리플리'언니. 파트너운(그놈의 직감 타령하는 쓸모없는 멀더 자식) 지지리도 없어 고생하는 엑스파일의 뇌섹녀 '스컬리'언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에서 과학적 신념과 용기를 보여줬던 '엘리 에로웨이'박사, 그리고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FBI 요원이 되어 살인자와 심리싸움을 해낸 '클러리스 스탈링'.(공교롭게도 이 엘리 에로웨이 박사와 클러리스 스탈링은 나의 최애 배우인 조디 포스터가 연기했다. 맞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배우 언니 1위는 바로 조디 포스터였다.) 3차원의 이 분들도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내 마음의 '멋진 그분'의 왕좌는 2D 캐릭터인 이분

바로 '공각기동대'의 영원한 영웅인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이 차지했다. 위의 네 분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실제 사람도 아니거니와 작품 내에서도 뇌 일부분 빼놓고는 전부 기계로 되어 있는 사이보그였다.



어머, 그래서?


모토코 언니가 내 맘을 뺏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분의 모든 것이 맘에 들었지만 그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저런 대사에서 나오는 태도다.

어릴 때 그 생각이었다 '쿨함'을 인간으로 빚는다면 딱 '쿠사나기 모토코'일 거라고.

노심초사에 생각이 많아 고통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초탈함과 여유'가 있었다.

사고 치는 놈들 좀 혼내주다가 몸 좀 부서지고 해도 얼마든지 백업과 수리가 가능하니까. 일단 행동계획을 세우면 굳이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모토코 소령은 나처럼 밤 길을 두려워할 일도 불필요한 감정적인 얽힘이나 후회 때문에 고통받을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 감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두려움'과 '안전욕구'따위는 이미 극복 완료였다.


난 아직도 내가 '안전하지 못하다'라고 느끼고 있다. 사람이 자기의 삶을 콘텐츠 장르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구에게는 인생이 '시트콤'이고 어떤 이에겐 '로맨틱 코미디'일 수도 있다. 혹은 '대하드라마', '정치풍자극'. 경험상 내가 살아온 삶을 영화나 드라마로 표현하자면 '재난영화'나 '범죄영화나 호러', 가끔은 '블랙코미디'같다.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살다 보니 그리 됐다. 그래서 아직 그 안전의 욕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토코 소령에겐 이 부분은 태생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백업 가능한 몸이라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일까? 나이나 성별에 갇힐 필요가 없다. 성적대상화의 감옥에서 저만치 벗어나는 거다. 이런 후련함이 또 있을까? 임신, 출산, 육아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으니 어떤 '사회적 약속이나 구질구질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모토코 소령이 참 좋았다. 최근에 극장 개봉한 알리타도 마찬가지다. 수명의 한계가 없기에 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렇게 살다 보면 불편한 관계들이 싹 다 리셋된다. 그리고 강화된 신체를 획득해 재조립하면 이전에는 해낼 수 없었던 신체활동이나 전투까지도 가능하다. 태생적으로 쿨 해서가 아니라 쿨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난 그놈의 수리비가 아까워 셀프 업그레이드를 종종 한다. 노트북 뒤판을 열어 SSD나 RAM을 추가 설치할 때마다 내 신체나 두뇌가 이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CPU야 타고났을지 몰라도 추가 업그레이드로 좀 씽씽 돌아갔으면 하고 말이다. 확장 슬롯을 갖춘 컴퓨터 같은 신체와 정신, 성능 좋은 전뇌. 필요한 기능을 얼마든지 추가하고 제거하고 때론 바꿔 끼울 수 있는 상태로 사는 기분은 어떨까 정말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은 나라 한 구석에 사는 소녀는 인생 슬로건을 하나 정했다.


인생은 모토코처럼.


그런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난 생몸을 가진 그저 사람이니까.

그렇게 쿨하기에는 탱크와 싸울 체력도 없었고, 전뇌전을 할 지능과 내부 설치 소프트웨어도 전투 경험도 전무했다. 무엇보다 적당히 거리 잘 두고 지원 잘해주는 공안9과 동료들도 주위에 없었고 말이다.

모토코 소령이야 이미 그렇게 살고 있으니. 참 신날 것 같았는데 이분도 삶이 백 프로 맘에 들진 않았나 보다.

매슬로우의 5단계 즉 '자아실현'에 접어든 단계라서 그랬나? 싶기도 했다.



최초로 영상화된 극장판(1995년)에서 모토코 소령은 끊임없이 잠수를 하면서도 작전 중에도 자아를 찾아 헤맸다. 좀 의아했다. 고민이라곤 없을 저 양반이 뭐가 모자라서 저러지? 나 같으면 테러리스트들 전뇌를 신나게 헤집어서 미치게 만들거나 물리적으로 뚝배기 깨서 공 세우고. 고스트해킹 외주일 받아 투잡좀 뛰고. 남는 시간엔 공안9과 친구들과 맛집 투어나 다니거나, 바토네 놀러 가 그 집 강아지랑 놀텐데...라고.

그러나 극장판 개봉 이후 '쿠사나기 모토코'의 전사를 담은 공각기동대 S.A.C 2nd GiG와 Arise Border:1을 보면 모토코가 처음부터 쿨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의체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어릴 적 병상 동료를 잃고 되찾는 과정이 고통스럽게 그려졌고. 의체에 익숙해져서 작전에 투입되기 전엔 말도 못 하는 학대를 겪고 이후 그만큼의 치료와 훈련을 겪어내야 했었다.

내가 동경했던 모토코의 무심함과 초탈함은 바로 그 시간들이 쌓아올린 '경험의 산물'이었던 거다.

'확장 슬롯'은 물리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모토코 소령이 보내온 시간과 감정 속에도 존재했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다양성과 변동성을 갖고 싶은 거구나

작품에 감히 내 생각을 보태보니 모토코 소령이 아무리 백업 가능한 육체라고 해도 '전투 스트레스'는 별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그 최고급 전투 의체가 대충 나라거라 운신의 한계 땜에 답답한 적도 많았을거다. 또, 인간이 만든 모든 건 낡기 마련이니까 의체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기적으로 펌웨어 업그레이드 하고 그 비싼 하드웨어를 유지 보수하려면 개인이 감당하기 꽤 어려웠을거다(모토코 언니가 꿍쳐놓은 개인재산이 꽤 된다 할지라도). 그래서 이 분은 일단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했을 거다. 그 노빠꾸 성격에 그게 쉬웠을까? 모토코 소령이 워낙 능력자라 그렇지 아라마키 부장은 시도 때도 없이 프로젝트를 떨군다. 그것도 위험한 걸로만 골라서. 동료 바토도 잔소리가 좀 심한 편이고.

무엇보다 소령이 사람인 이상 결핍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보니 개빡센 부서에서 짬바가 쌓여 결국 해탈해버린 공무원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1995년 판에서 모토코 소령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의 생몸을 가진 토구사가 왜 자기가 이 팀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획일화된 조직은 결국 자멸하게 되어 있다고 다양성이 필요했다고 대답한다.

효율이라는 단어가 커버할 수 없는 부분. 그리고 다양한 변수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약해 보이는 구성원도 필요하다는 거다. 이 부분이 바로 네트워크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해 진화한 인격체 2501과 닿는 부분이었다.

영원히 강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쭉 가다간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고 외부 변수가 나타났을 때 답이 없어진다는 것. '영원과 강함'속에도 불안은 꽃피고 있었다. 이걸 두려움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확장 슬롯이 빵빵해서 문제가 없는 그들도 또 다른 확장 슬롯을 찾고 있었다고 보고 싶다.

쿨해지기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 전뇌전 겪은 우리 모토코 언니. 언니도 고단한 생활인이었구나.

맘이 갑자기 짠하다.

사람은 다양한 사건과 삶의 단계를 겪고 삶이 끝나지 않는 한 그 단계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제와

싸워내야 한다.


마지막에 2501과 융합해, 잠깐 아이 몸에 머문 '모토코 소령'의 마지막 대사

'네트는 광대해'

내겐 퇴사러의 마지막 말처럼 들린다.


안녕히 계세요 공안9과!
나는 이제 아라마키 부장이
무한으로 떨구는 부담백배 플젝과
바토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광대한 네트 어디에서나
멋대로 깽판 치는 존재로
업글해서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사진출처 : 공각기동대(1995년 판) 캡처, 알리타-배틀앤젤 영화클립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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