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을 떠나며

Dancing with monsters 10

by Dolphin knows

한달 전 큰 병원서 검진받을 일이 생겼고 어차피 병원 일로 하루를 할당했으니

어디 좀 생각 없이 가보고 싶었다.

날씨도 적당히 쾌청한 가을이었고... 그 병원은 근처로 가는 셔틀노선을 운영했다. 검진을 마치고 난 가장 처음 오는 버스를 타고 경복궁에 내렸다.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를 스쳤고 몇 년 전까지는 꽤 자주 들렀던 혼자 혹은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던 필운동과 청운동을 거쳐 부암동에 올라갔다.

1990년 초부터 그대로 있었다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를 몇 번을 바꾼 부암동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숨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을 쭉 걸었다. 예전, 특히 20대에 친구들과 자주 갔던 곳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게 큰 미술관 그리고 네임드 가게 몇 개 정도. 당연했다. 북악팔각정의 매점과 음식점도 입찰 중이라며 텅텅 비어있었다. 결국 '사람'의 문제였다. 사람이 그곳을 채우지 않으면, 또 사람의 의지와 생각이 그곳을 유지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그대로 일 수 없었다.


내가 살았던 종로구 그중 00로(여기에도 가정집이 있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더라)는 원래 을씨년스러운 동네였다. 고층빌딩이 만들어내는 빌딩풍이랄까? 다른 곳보다 기온도 낮았고. 오랫동안 죄인을 처형하고 탐관오리를 벌하는 육조거리가 조선왕조 내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과 학교 등 그 동네에는 옛 왕궁 몇 개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고 우리 집 바로 옆의 궁터는 무려 '피난용 벙커'를 숨기고 있었다.

요새야 궁의 야경을 잘 정비해 사람들이 낭만을 찾으러 돌아다니지만 밤의 궁궐 그땐 그냥 '괴담'의 무대 같았다. 뭐가 나와도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극에서는 궁을 아름다운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고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높으신 분들의 말 한마디와 고문과 칼질에 스러져간 사람들의 원한으로 가득 찬 곳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일제가 그 궁들을 하나같이 비참하게 박살내고 훼손했다. 건물이나 땅에 기억이 있다면, 그곳엔 분노와 원한이 가득할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어릴 때 난 내가 사는 그곳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관과 교보문고, 각종 관공서 등을 걸어갈 수 있어 편하지만. 그 동네는 좀 잔인하고 무정했다. 촌지에 미친 초등학교 선생이 애 하나를 찍어 왕따와 학폭 주도를 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거칠고 사나웠다. 그리고 당시 치고는 아이들 수가 적었다.

부모가 대부분 맞벌이 거나 혹은 엄마가 외벌이 거나 둘 다 장사를 하느라 아이들을 살뜰하게 돌볼 시간이 없는 그 동네는 그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아이들이 많고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당연히 보호하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포근함이나 안정감 대신. 무심한 냉기가 곳곳에 흘렀다. 길가다가 깡패에게 돈을 빼앗긴 적도 있고, 공원을 걷다 성추행범이 다가와서 미친 듯이 뛰어서 소리 지르며 도망친 기억이 있으니까. 그 유서 깊고 화려한 서울의 중심부는 어린아이에게는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대신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 사이사이 각 나라 대사관과 꽤 번듯한 양옥집 사이사이로 정치인들이 들락거리는 요정이 있었다. 맞다. 그 정치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요정 맞다. 밤에는 온갖 외제차들이 그 앞에 쫙 서 있었다. 그 안에서 내가 모를 일들 특히 우리나랄 좀 힘들게 만든 일이 많이 일어났을 거다.

각종 관공서와 언론사, 문화시설 무엇보다 대기업들이 세운 그 화려한 빌딩 숲도 내겐 그랬다. 한때 그중 몇 건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봤던 여러 가지 일들. 등록금을 벌러 나온 아르바이트 생이 겪어야 하는 온갖 갑질과 어깨너머로 지켜본 '그들의 세상과 그들의 싸움' 그리고 모 정권에서 행했던 물대포와 컨테이너 산성, 무자비한 진압 등등. 그 건물이 내는 번쩍번쩍한 빛이 눈은 부셨지만 따뜻하진 않았다.


그리고 적산가옥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뮤직비디오를 볼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실제로 살아보라지.

일단 지상임에도 구조를 어떻게 그렇게 해 놨는지 빛이 정말 안 들고, 음산하게 긴 복도에 무슨 피난용 벙커 같은 위장 문들. 지금도 질색하는 그 냉기와 습기가 가득했다. 온돌공사를 제대로 하기 전까진 난 한국인데도 집에서 피는 버섯을 봤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나는 가위에 자주 눌리고 악몽도 자주 꿨다. 일본인들은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집을 좋다고 남의 나라에 지어놓고 살았던 그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내가 악몽이나 몸이 안좋은 상태로 잠들어 꿈을 꿀 때 그 집이 종종 나타났다. 또, 그 집에 온갖 이상한 생물들이 가득했다. 이미 사라진 그 집에 나는 참 많은 것들을 두고 온 모양이다. 그 동네도 마찬가지다.





게임 원작 영화 중 가장 영상화가 잘 된 영화인 '사일런트 힐(2006)'

원작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 자체를 잘 살렸고, 특히 '크리쳐' 디자인이 이질감 없이 잘 구현됐다.

사일런트 힐에서 특정 시간 대 나타나는 크리쳐 삼각두, 무서운 간호사, 철조망에 걸린 남자 등... 13년 이상 지났지만 사람들은 이 괴물들을 기억하고 때로 패러디 재료로까지 쓰고 있다.

보육원에서 데려온 샤론을 애지중지 키우는 로즈, 그러나 샤론은 정신적으로 트라우마가 심하고 자꾸 사일런트 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아이의 상처와 대면하여 치료하고 싶었던 로즈는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연기의 도시 사일런트 힐'로 향한다. 거기서 로즈는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아이가 사라진다. 아이를 찾아 헤매는 동안 로즈는 자기의 아이와 똑같은 딸을 가지고 있다는 한 이상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곧 초자연적 현상에 마주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온갖 크리쳐들 말이다.

본래는 전부 인간이었으나 하나같이 흉측해졌으며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고 또 그런 크리쳐가 무서워 교회로 피하는 한 무리의 인간들을 만나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현재의 시간에 살고 있지 않다. 이 영화에서는 일종의 과거 어떤 시점에서 발생한 '평행세계'라고 설명하는 듯했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갇혀있고, 이들을 과거에 가둔 건
다름 아닌 자신의 딸의 본체인 상처 입은 알레사였다



중간에 갑자기 불타는 모습으로 나왔듯, 로즈가 입양한 딸 샤론은 수십 년 전 그 '사일런트 힐'에서 마녀의 딸이라며 학교폭력과 따돌림을 당했던 알레사가 만든 분신이었다. 이 아이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고 성폭행을 거쳐 결국 광신도 무리에 의해 화형을 당하게 된다. 다행히 동네의 형사가 구출해 목숨은 건졌지만 온 몸이 화상에 입은 채로 이 마을 전체를 자신의 악몽 속에 가두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선한 부분을 꺼내어 '샤론'이라는 인격체로 보육원에서 키우고 언젠가 그 아이가 자기만큼 컸을 때 그 아이의 악몽을 통해 유인해 이 마을 사람들에게 최후의 복수를 해낼 계획이었다.

이 마을 전체가 이 아이의 상처 입은 마음 그 자체였고, 이 알레사도 어릴 적 나처럼 마음에 다양한 괴물을 키우고 있었던 거다. 이 영화가 그래서 낯설지가 않았다. 아름답고 추억이 가득한 어린 시절? 일부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모두 그렇게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현재까지 계속되는 악몽일 수도 있다.

나는 '응답하라'시리즈를 즐기지 못했다. 레트로 취향도 그렇다. '옛날이 아름답다고?' 아름답게 기억하기엔 슬픔이나 고통, 불합리도 만만찮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생각해봤다. 리코딩되어 그대로 재생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얼마든지 윤색될 수 있고 현실이 옛날보다 힘들수록 근거 없는 향수가 더덕더덕 붙기 일쑤다. 실제로 그 시절로 돌아가 살라고 하면, 그 시절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견딜 수 있을까? 지금을 경험한 이상. 그건 힘들거라 본다. 타임슬림 물을 봐도 별로 감흥 없는 게 그 맥락이다. 나 하나가 지금의 기억을 지닌 채로 10대로 돌아가 다른 삶을 산다고 해도, 나 이외의 변수를 조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모든 것을 아니까 더 절망할 수도 있다.

가엾은 로즈와 알레사(혹은 샤론) 악몽에 갇혔네

다시 사일런트 힐 이야기로 돌아가서, 영화 말미에서 알레사는 자기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지옥에 몰아넣고도 오히려 지네들의 안위를 위해서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자를 화형한 마을 사람들을 단죄한다. 그들이 칼로 로즈를 찌르자, 로즈의 피를 통해 최후의 복수를 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그 난장판 속에서 다행히도 주인공 로즈는 그 알레사에게서 자기의 딸 샤론(알레사의 선한 부분)을 구출해서 데려왔고... 그러나 반전. 이 샤론 속엔 알레사가 아직도 있었고 집에 돌아왔지만 남편과는 다른 평행세계 속에 갇혀버렸다.




이 영화는 호러 게임을 기반으로 한 호러 영화다. 그래서 이런 결말로 마무리되는 게 꽤 적당하다고 여겼다.

서사의 논리는 충분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보다 더한 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고, 알레사가 장성한 몸으로 상처 입은 채로 그렇게 악몽 속에 갇혀있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긴 악몽이 있어야 이 멋진 배경과 크리쳐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구현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생각을 좀 보태봤다. 알레사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세상은 좀 미쳤고, 악으로 가득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일부분인 '샤론'은 새로운 부모에게서 말도 안 되는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특히 아이의 마음을 치유하겠다고, 아이의 악몽 속으로 돌진하는 '로즈'. 또 그녀를 잊지 않고 그녀의 분노를 알아주는 친엄마 '달리아'. 둘 다 이 아이를 살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찾아서 안고 싶어 했고. 결국 로즈는 고난과 두려움을 뛰어넘어 아이를 구출해낸다. 그냥 단 한 번에 그들을 그들의 지옥에 버려두거나 죽이고 로즈와 새 삶을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비록 소수이지만 이 아이를 구해내려는 사람의 마음은 무지와 두려움, 편견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의 못남보다 훨씬 강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상처 받아

대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그 집을 정리했고 그 돈으로 빚잔치를 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지금은 동생들은 동생들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고 우리 집도 부채 없이 자가를 마련해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살림을 이어나가고 있다.

보이는 부채뿐 아니었다. 고생하면서 생긴 상처들을 때로 드러내고 때로는 감싸 안으면서 치유해갔다.

지식을 쌓고 때론 상처입거나 온갖 멍청한 짓을 용납받고 반성하며 어린 내가 성장했듯, 부모님도 실수와 실패를 거쳐 성장해갔다. 이 부분이 참 신기했다. 자기를 돌아볼 줄만 안다면 제대로 사과할 수 있다면 어른들도 계속 자랄 수 있었다.

특히, 어릴 때 패인 골짜기를 친구라는 높은 언덕이 채워줬다. 나와 아픔을 공유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웠던 중학시절 친구, 내 생일이라며 몰래 나가서 내 취향을 고려하고 고려한 선물을 준비해 반에서 깜짝 생일파티를 해준 고등학교 친구들. 또 항상 노심초사하고 상처 입던 나에게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상처 받아'라고 했던 대학시절 친구와 내가 차마 어렵다고 말하지 못했을 때 '신이 너의 필요를 채운다'문구가 쓰인 봉투에 적지 않은 돈을 채워서 나에게 준 누구 등등.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의외로 어린 시절 만났던 친구보다 끈끈하기도 했다. 가끔은 나를 외국으로 불러 새로운 세상을 경험시켜 주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중간에 이상한 사람도 많았고 상처 받는 일이 없진 않았지만. 비율이나 영향력으로 따진다면 좋은 쪽이 더 많았다.

작년만해도 위급하고 공포스런 상황땜에 넋놓고 있었을때 갑자기 친구가 차몰고 찾아와 날 자기 집으로 싣고 가서는 피신시켜줬다.

어릴 때 들은 못된 말과 저주의 말, 때론 사회에서 받은 상처들을 털어놨을 때 '그들이야말로 괴물이고 자기가 못나서 온갖 핑계와 거짓말로 사실을 왜곡하는 거 모르냐고. 걔네가 사는 꼬락서니를 보라'며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줬던 지혜로운 친구들도 기억난다.

고통이 심하고 외로워서 괴물을 만들어 기댔던 어린 시절. 어느 정도 큰 다음에 그때를 돌아보니

가해했던 그들이야말로 자신과 환경이 끔찍해서 고통받는 '괴물'이나 사일런트 힐에 나오는 '영원히 고통받는 크리쳐'처럼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맘을 정했다.


가치 없는 인물이나 사건은 소각해버리자.
난 지금 여기서
내일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그 오래된 적산가옥은 옆집까지 싹 다 헐려 한 대기업 연구소로 변했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던 동네는 몇 번의 '핫플'광풍이 지나간 후에 재정비됐다. 변해서 아쉽다는 사람이 있지만, 난 오히려 이 편이 더 좋다. 좋은 것이 변해서 사라지거나 낡아지듯. 나쁘고 힘든 일도 낡거나 사라지니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2년 전 그 집이 그렇게 변한 걸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이후로 그 집은 다신 내 악몽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 대신 싸워줬던 괴물을 이제 SCP재단에 분류해서 보내주려 한다. 나 말고 지금 괴물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버팀목이 됐으면 좋겠다.


http://scpko.wikidot.com/about-the-scp-foundation


어릴 적 괴물을 통해서야만 싸울 수 있었던 모든 대상들이 크고 보니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기세도 시간을 못 이기고 사라지거나 미약해졌으니 말이다.



사진출처 : 영화 사일런트힐(2006)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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