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봐요 싸이파이 7
사람들은 내게 왜 그토록 SF에 집착하느냐고 묻는다. 난 집착하지 않았다.
그저 상상력이 나를 이끄는 곳으로 달려왔을 뿐.
SF 속에서, 당신 또한 상상 가능한 곳으로
얼마든지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SF의 주류로 받아들여지게 된 건 '백인 남자' 시쳇말로 '홍인들'덕이다.
사실상 싸이파이라기 보다는 서부 혹은 왕조 이야기인 루카스의 스타워즈도 그렇고
대부분 남자들의 지지부진한 영웅담을 레이저와 신소재, 멋진 우주 풍광을 버무려서 잘 만들어낸 상품이라고 본다.
사실 이 모든 편견의 출발점은 소설이었다.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 같은 영미권 작가와 동구권 출신의 아시모프 같은 소위 SF라는 장르를 한 줄도 안 읽어본 사람도 이름 아는 작가들이 써낸 소설엔 공통점이 있었다.
백인이 중심이 된 세계, 거기서 활약하는 백인 남자 주인공.
그리고 외계인 전쟁
그들의 공통점은 과학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류 백인 남성이었고, 그들이 경험한 세계는 나름 다양했겠지만. 사고의 틀은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SF는 가장 진보적 이어 보이지만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기득권의 유희 같은 것이었다.
그 대척점에 와 있는 게 어슐러 르 귄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무엇보다 옥타비아 버틀러!
심지어 앞의 두 백인 여성은 처음 '여자'의 이름으로는 SF 작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편집자의 말에 따라. 약칭을 쓰거나 남자 같은 이름을 써야 했다.
그 틀 안에서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꿈을 꿨다. 현실이 단 한 번도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
옥타비아 버틀러의 말대로 상상력이 이끄는 곳으로 달려왔을 뿐이다.
여자 그것도 흑인 여성이 쓴 SF는 이렇게 기존에 점점 지지부진 해져갔던 SF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인류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했다.
흑인 노예제에 대한 역사를 SF로 풀어낸 '킨'이라는 걸작도 그랬고
총 7가지의 이야기가 담긴 본 단편선도 그 작업 중 하나다.
이 소설집은 총 일곱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 블러드 차일드
2. 저녁과 아침과 밤
3. 가까운 친척
4. 말과 소리
5. 넘어감
6. 특사
7. 마사의 책
다섯 번째 단편 넘어감은 SF라기보다는 습작을 하던 시절 옥타비아 버틀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버무려낸 짧은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인종과 성, 병과 언어 종교까지 아우르는 신선한 소재로 잘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표제작이라도 한 <블러드 차일드>는 무려 '오로지 남성이 하는 임신'을 다루고 있다.
이 소재는 그 진보적이며 인류학적인 소양이 풍부한 르 귄이 쓴 '어둠의 왼손'을 뛰어넘는다. 그저 같은 종류의 인류(넓게 보면) 서로 특정한 성이 발현되어 아이를 낳는 것인데,
이 옥타비아 버틀러가 보여주는 새로운 생명 탄생 메커니즘은 외계에서 온 특정한 종족이 인류를 장악하게 되고
사실 여자 쪽이 더 낫지만 새로운 숙주를 키우기 위해 아껴두고 남성만을 출산 도구로 선택해서
여성 외계인들이 남성의 몸에 아이의 씨를 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갈비뼈 쪽을 갈라 꺼낸다는 점이 색다르다.
재미있는 건 이 과정을 영화 에일리언처럼 말도 안 되는 강간이나 사육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힘의 격차로 인한 로맨틱한 감정까지도 그려낸다는 것이다. 또, 주목할 만한 건 외계인들이 무정란 그러니까 수정되지 않은 알을 인간의 먹이이자 유희거리로 그들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 알을 즐기며 노화를 막기도 한다.
무엇보다 출산(?)의 과정을 지켜보고 겪어내는 남성들이 느끼는 공포. 그 와중에 어떤 부류는 철저히 거부하며 도망치고 어떤 부류는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감정으로 심지어 '로맨티시즘'으로 그 과정을 겪어낸다.
일종의 거울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출산의 과정은 아름답기보다는 끔찍하며, 아직도 출산 시 후유증과 출혈 죽음까지도 겪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 모든 게 '로맨틱', '숭고함'으로 덮여서 그냥 생의 한 단계로 무조건 받아들여지길 요구되고 있다. 동서양 문화 차이는 있어도 큰 얼개는 비슷하다.
<저녁과 아침과 밤>은 항암제를 먹은 사람의 아이들이 자신을 해치는 부작용을 겪는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장점이 바로 여기서 발현되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들듯이 크게 어떤 사실을 흝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사회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행동과 감정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가.
특히 '특정한 표식'이 찍힌 개인들을 외부인이 어떻게 대하며, 그 개인들은 어떤 감정과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후기에서도 나와 있듯이.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 특히 흑인 여성 SF 작가의 마음과 눈으로 지켜본 세계는 기존의 SF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특사>나 <넘어감>, <말의 소리>에서는 폭력이 다양한 모양으로 묘사된다, 특히 주류가 아닌 사람들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강도는 매우 강하며 슬프게도 그 폭력은 일상에 녹아들어 있다. 그 폭력은 단지 주류가 비주류. 강자가 약자에게만 벌이는 일이 아니다. 겁에 질린 약자와 비주류 사이에서도 이 폭력은 비일비재하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이런 폭력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뻔하지 않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스스로 혹은 주위에서 무엇을 보고 겪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미래로 향하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문학일수록 주변인의 시선이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 SF 계가 이 분에게 그렌드 데임이라는 칭호를 선사한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SF를 SF답게, 계속 내일로 나아가는 장르로 살아남을 수 있게 큰 공헌을 한 작가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