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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phin knows Dec 07. 2023

월성의 동쪽

천 년의 주령구 07

목이는 그 이후 여기저기 끌려다녔다. 월성 곳곳 김위홍은 돈염을 시켜 목이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고, 혹은 돈염이 금, 옥, 비단을 받고 궐 안의 높으신 분들에게 노리갯감으로 주었다. 목이가 즐거워하지 않을 다채로운 일을 시키며 그들은 즐거워했다.

목이는 주로 월성의 동쪽, 동궁에 끌려갔다. 그것도 해가 저물 무렵부터 밤까지 말이다.

여기저기 횃불과 등잔이 켜졌다. 화려한 치장을 한 사람들이 월지에 배를 띄우고 놀고 있었다. 목이를 붙들어간 사람은 목이를 월지 가운데 있는 섬으로 미리 데려다 둔 뒤였다. 다 월성의 사람들 그중 왕의 친적이나 높으신 분의 자제들이었기에 뭐든 아낌이 없었다.

만왕이 즉위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풍족했던 서라벌은 눈에 띄게 쇠락해 갔다. 장작을 팰 필요도 없이 숱으로 밥을 해 먹던 사람들이 겉보리도 구하기 힘들어서 고생하고 있었다. 그나마 목이네 역은 먹고살만했지만 목이와 한 동네 살던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어 멀건 죽을 쑤어 먹거나 그것도 없을 땐 나무껍질을 벗기거나 집 벽을 파내어 그 안에 있는 볏짚을 삶아 먹고 버텼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끼니를 걱정하는 때에도 월성의 그 사람들은 온갖 귀한 음식을 도자기와 유리그릇에 장식해두고 있었다. 다 먹지도 못할걸 그저 보기 좋으라고. 저 배 안에 있는 음식만 해도 목이가 있던 역에서 손님을 다섯 무리는 치를 양이었다.

특히 목이의 눈에 띈 건 저 유리 술잔을 둘둘감은 금실이었다.

언젠가 역에 묵은 서역상인이 목이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신라는 금이 풍부한 나라라든데 왜 여기는 금제품이 널려있지 않아? 금그릇에 밥과 차를 그득그득 내 올 줄 알았어"

목이는 차를 따라주며 웃었다.

"그건 월성, 그러니까 왕궁에 사는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이나 넉넉하게 쓰는 거지 저 같은 사람은 다 똑같아요. 엄마 금반지 선물 하나 사려면 돈을 모으고 또 모으고 많은 곡식과 바꿔야 해요."

저 금실이 목이에게 계속 걸렸다.

저 유리 술병을 묶은 금실을 싹 다 풀어서 엄마의 손목에 둘러주고 이 미친 월성의 골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묶여있는 건 깨진 유리술병의 손잡이가 아니라 목이었고 또 월지 저쪽에서 목이를 쳐다보고 있는 옥령의 두 팔이었다.


나무에 갇힌 이후, 목이는 그날밤과 그날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수많은 날들이 끝난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답답하고 황당했지만 더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에 안도했다.

그냥 꼭두각시 그 자체였다. 옷이 벗겨지고 입혀지고 팔다리며 뭐며 머리에서 발 끝까지 목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위홍과 그의 사람들. 월성의 높으신 분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아니 그들의 핏속에 흐르는 비싼 술이 멋대로 목이를 모욕하고 상처를 줬다. 그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즐거운 대로 했을 뿐이다. 귀족도 아닌 어린 사내아이 하나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죽든 말든. 다른 이쁘장한 아이를 데려오면 되는 데 뭐가 거리낄게 있었을까? 그들은 이 사치스러운 연못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14개의 면으로 된 주사위 '주령구'를 던지며 술을 마시며 놀았다. 벌칙은 다 목이에게 몰았다. 그러나 그 주사위에 쓰인 장난스러운 벌칙보다는 더 뒤틀리고 끔찍한 짓을 해댔다. 목이가 끔찍하게 망가질 수록 그들은 만족해 했다. 그 주령구 놀이도 지겨워지면 다른 일을 했다. 바로 목이가 그들의 손아귀에서 여기 굴려지고 저기 굴려지는 인간 주령구가 되었다.

어느 날에 그들은 술만 가져오지 않았다. 동로마에서 가져온 거라며 빨갛고 화려한 꽃에서 추출했다는 약물을 사치스럽고 작은 유리잔에 담아 자기네들도 먹고 또 목이에게 억지로 먹였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더 끔찍했다. 절대로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행히 그 일이 일어날 땐 정신이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으나 정신이 깨었을 때 온몸이 아프고 어느 곳에는 피가 나있고 붓고 쓰리고 한걸 보면 무슨일 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됐다. 알고싶지 않아도 저절로. 돈염은 목이를 깨뜨리고자 했다. 목이를 지키고 있는 목이의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야 다른 것을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염은 그래서 굳이 노리갯감이 된 목이를 지켜보게 한 거다. 옥령의 단단한 마음도 함께 부서져야 목이가 지탱할 힘이 없어진다고 확신했으니 말이다.


'몸과 영혼은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몸의 행동이 영혼에 영향을 미치고 영혼의 방향이 몸이 할 일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영혼의 밭이 부드러워져 더 큰 영을 받아들여 몸을 넘어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건 돈염도 옥령도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 옥령은 이에 금이 가도록 이를 딱딱거리고 깨물며, 아들을 위해 버텼다.

또다시 둘이 갈라져 서로 다른 곳에 있었을 때, 죽을힘을 다해 큰 거울을 만들었고 만신창이가 된 목이에게 계속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내 아들. 저들이 개와 돼지고 저들이 꼭두각시다. 저들이야말로 이미 자기가 불러들인 악신에 스스로 문을 열어준 자들이라 자기 재앙을 재촉하는 거다. 수치는 저들의 몫이다. 너는 아니야. 목아. 너는 무너질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심지어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돈염은 옥령이 목이와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밤, 그 모자의 특별한 능력으로 서로 거울 안팎으로 마주보듯 하는 일도 방해하곤 했다. 항상 성공한 건 아니지만, 갑자기 거울이 흐려지거나 꼭 창문에 피가 잔뜩 흘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듯이 그런 식으로... 대놓고 말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 그것이 무섭고 분하고 원통했다.


목이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월성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봐야 했다. 사람뿐 아니었다. 꼭 어미 앞에서 새끼를 잡아 죽인 뒤에 어미를 죽여 그 피와 가죽으로 악신들을 불러냈다.

'원(怨)'

돈염은 그 의식을 할 때 꼭 저 글자를 금실로 수놓은 비단 깃발을 걸었다. 모든 의식, 그러니까 목이와 옥령 그 외 다른 사람과 살아있는 것들에게 행한 그것의 목적이 그거라는 것. 저 한 글자가 가진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더 그런 짓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목이가 또다시 월지로 끌려온 어떤 날, 다행인지 그 높으신 분들 사이의 약속이 갈려 거의 반나절을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목이의 몸은 온전히 목이의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냥 이대로 숨이 멎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섬에서 물가로 나아갔다. 사람이 판 연못이지만 제법 컸기에 몸에 큰 돌을 달고 버티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물을 바라보았는데, 영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도대체 어느 곳일까? 왜 저런 이상한 차림을 하고 있는 걸까? 또 왜 내가 있는 자리에 큰 이팝나무가 있는 걸까?

지금 온몸이 따갑도록 아프고 움직일 때마다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누가 툭 건들면 통곡이 나올 것 같은 이 망할 월성의 분위기와는 다른 풍경이 비쳤다. 그곳은 평화로웠고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고 이상한 물건을 들고 다녔다.

간절히 바랐다.

'제발 엄마를 데리고 저 세계로 갈 수 있다면'

그러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돈염의 졸개들이 깨울 즘엔 날이 어둑해졌다.

목이는 그게 그때까지는 그저 꿈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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