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보다 진심이 먼저였던 첫 시작
6개월간의 캐나다 어학연수와 2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무더운 여름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임용고시는 다시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고, 해외에서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막연한 그림만 머릿속에 그려두고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소속도 없던 나는, 좋게 말하면 유학 준비생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백수였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토플과 GRE 학원을 다니던 중, 추천서를 부탁드릴 겸 학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육대학원에 가는 건 좋은데, 현장 경험 없이 곧바로 연구에 들어가는 건 너무 이르지 않을까?
학교에서의 경험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거야.”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길로, 사립유치원 교사 채용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는 해도, 교육 현장 경험이 전무한 나는 언제나 경력자들에게 밀렸다.
이름 있는 사립유치원들은 대부분 경력직만을 채용했고, 나는 늘 ‘불합격’ 통보를 받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지원한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 역시 경력직 중심으로 채용한다고 했지만, 너무 간절했던 나는 면접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결국 전화를 걸었다.
“혹시 면접 결과가 나왔을까요...? 저는 정말 이 유치원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전화를 직접 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자신이 없어서, 친구에게 대신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었다. 전화를 건 친구는 충청도 출신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전화를 받은 원감 선생님이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네”라고 하셨단다.
전화 한 통의 절박함과 솔직함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그래서 채용을 결정했다고, 훗날 원장, 원감 선생님께서 내게 웃으며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첫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맡게 된 반은 만 5세 아이들 36명의 담임이었다.
유치원에는 네 개의 만 5세 반이 있었고, 반 이름은 다정반, 슬기반, 소망반, 그리고 사랑반이었다.
내가 맡게 된 반은 바로 ‘사랑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초임인 나에게 사랑반을 맡긴 이유는,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 주라”는 원장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였다고 한다.
입학식 날, 학부모와 아이들 앞에서 각 반 담임 선생님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다정반, 지혜반, 슬기반…
경력 7년, 10년, 13년의 베테랑 선생님들이 이름과 함께 소개될 때마다,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신뢰가 스쳐갔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반.
“사랑반 담임은 이번에 새로 오신 선생님입니다.” 그게 전부였다.
초임이라는 것 외에, 내 이름 앞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이든 기대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학부모님들 중 몇몇의 얼굴에서는 분명 실망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진심으로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겠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36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은 경력도, 배경도 따지지 않았다.
편견 없이, 조건 없이, 그냥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었다. 그렇게 나는, 교사로 살아가는 삶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사랑반. 그 이름처럼, 아이들의 사랑으로 시작된 내 교사의 삶은 이후 어떤 순간에도 잊을 수 없는 처음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