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Jul 10. 2023

7. Bodnant gardens

내 사랑 영국 정원

정원이라기엔 많이 크다. 약 10만 평 정도 되는 대지에 온갖 종류의 식물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지금까지 네 번 방문했지만, 아직 이 정원의 구석구석을 다 보지는 못한 기분이 든다. 갈 때마다 처음 보는 꽃을 발견하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나무들을 보고, 크기와 종류가 다른 숲 동물들을 만난다. 그래서 매번 즐겁다.


워낙 넓다 보니 분명 주차장은 꽉 차 있었는데 정작 정원 내에서는 사람과 부딪혀 가며 걷는 일이 드물다. 이곳을 두 번째로 방문했던 때는 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다. 사람이 하도 없어서 약간 으스스한 기분으로 woodland를 걷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자 무슨 일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남편. 그리고 그 장난이 두세 번 이어지자 겁을 먹은 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제야 장난이었노라 남편이 고백했고 아이는 깔깔거리며 재미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기억이 왜곡되어 보드넌트 가든은 어깨를 두드리는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세 번째 방문(네 살 무렵)에도 긴장을 풀지 않더니 저번 주 방문에도 '이번에는 귀신이 어깨를 안 두드리겠지?'라며 아빠의 다짐을 받아내는 건지 귀신에게 엄포를 놓는 건지 모르겠는 말을 하는 아이. 분명 우리가 그 상황을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겐 아니었나 보다.


가든 입구에 티룸이 있어서 애프터눈 티세트를 즐길 수 있고 hot food나 다른 디저트도 서빙이 되니 긴 산책 끝에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다. 이곳은 가든 센터가 있어서 식물을 좋아하는 지역 주민들이 플랜트를 사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종류도 많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마음에 드는 식물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큰 기념품샵도 바로 나란히 붙어 있는데 어디 가든 기념품을 사서 모으는 아이에겐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라 매 번 들른다. 모은 용돈을 기념품 사는 데 쓰는 아이를 보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들지만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 둔다. 여러 지역 특산품이 고급스럽고 아기자기하게 전시되어 있어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입장료가 많이 비싼 편인데 어른 기준 15 파운드, 아이들은 7.5파운드이다. 이곳은 개인 소유였다가 오래전 National Trust라는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자선기관으로 넘어갔다. 영국 내에는 500개가 넘는 National Trust 지정 장소들이 있다. 종류도 다양하고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National Trust 카드 등록비를 내면(1년 가족 기준 140파운드 정도) 어느 곳이든 무료로 방문할 수 있어서 일 년에 세 번 이상 갈 계획이 있다면 멤버십이 경제적이다.

National trust 멤버십 카드


런던에 살 때,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러 리치먼드에 자주 갔었다. 런던의 남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있다고 알려진 Kew gardens 큐가든이 있는 곳이다. 이제껏 세 번 갔었는데 아직 다 둘러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큐가든은 보드넌트 가든에 비해 4배 이상 크기 때문인데, 그만큼 오래 걸어야 하고 어트랙션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다 둘러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입장료도 24파운드로 비싸다(피크 시즌 가격). 하지만, Things to do in London에서 빠지지 않는 장소로 추천되는 곳이니 런던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이라면 시간 여유를 두고 이곳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아름답고 고요해서 내가 런던에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한데, 지방의 산속 가든이 주는 느낌과는 또 다르게 세련되고 웅장한 분위기이니 방문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전원 속에서 인상을 찌푸린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보드넌트 가든에서 마주치는 모두가 입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푸른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힐링이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관리를 받고 있는 정원이지만, 들꽃이 피어나고 하늘을 덮을 듯 키가 큰 나무들이 즐비하다. 자연과 하나가 된 인공적인 정원, 아니 인간이 만든 정원이라기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땐 전원 속에 앉아 모든 생각을 거두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무, 곤충의 날갯짓, 향기로운 꽃내음에 집중한다. 많은 사람의 정성과 노력으로 가꾸어진 정원의 기운을 듬뿍 받아 마음을 초록으로 충전하고 나면 갑자기 없던 식욕이 샘솟고 기분이 활기차다. 두 시간을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을 듯 에너지로 가득 차다. 이 회복의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기를.





다음 이야기 8. Anglesey_윌리엄과 케이트의  섬 Llanddwyn island & South Stack lighthouse







매거진의 이전글 6. Betws-y-co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