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Aug 18. 2023

둔한 사위지만 미안하지 않아요, 엄마 2

모두가 좋아하는 둘째 사위

내 결혼식에서 내 동생에게 반한 남편의 베스트프렌드는 연애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결국 나의 제부가 되었다. 말이 안 통하는 사위가 둘이나 들어왔다며 마뜩잖아하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는 '언어가 달라 얼마나 다행인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대화를 위해 마주 보고 앉아도, 엄마는, 상대가 원치 않는 조언이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는, 둘째 사위를 편애한다.


눈치 없는 첫째 사위가 눈치채도록 (싫다는) 감정을 표현하려면 노골적인 수준의 구박이 필요한데, 그건 차마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둘째 사위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사위들에 대한 감정이 절대 같지 않음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자기도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이므로, 장모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이지만, 가끔씩 자신이 덜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는 남편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엄마의 의도대로 남편이 편애와 차별을 눈치채긴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둘째 사위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남편에게 '엄마가 당신을 덜 좋아한다기보다 사실은 미워한다'라고 차마 말해줄 수는 없다.


나의 제부, 엄마의 둘째 사위, 그는 예민한 남자다.


예민하지만 까칠하지 않고, 예민한 만큼 사려 깊고 친절하며, 예민해도 감정적이지 않아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의 공기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 있고 사람을 잘 파악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든 상황에 관해서든 그의 예측은 예외 없이 적중한다. 그는, 통계를 전공한 비상한 두뇌로 하는 일마다 변수를 고려한 정확하고 안정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성향이 정반대인 아들을 훌륭하게 양육하며 늘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족에게도 존경받고 인정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예민한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긴다. 그러므로, 발생한 스트레스는 회사나 가정에서 불편한 모양새로 뜬금없이 발현되지 않는다.


예민한 나의 원가족보다 더 예민한 그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그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며 공정하게 판단해 준다. 예민한 성격으로 살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랄까. 예민한 내 성향을 버릴 수 없다면, 궁극적으로 내가 되어있고 싶은 상태랄까.


예민한 그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내 남편이다. 예민함을 모두 거두고 만나 긴장 없이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 듣고 싶은 말이 딱히 없고 그저 솔직함을 미덕으로 삼는 사람, 백번을 실수해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받아줄 사람, 그게 내 남편이다. 내가 남편을 통해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부 역시 느끼고 있는 게 아닐지.


엄마가 아무리 편애를 해도, 서로 동서지간이기 훨씬 이전부터 절친이었던 남편과 제부 사이는 견고하기 그지없다. 둔해서 밉상처럼 느껴지는 첫째 사위지만, 그는 엄마가 그렇게나 아끼는 둘째 사위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전 08화 둔한 사위지만 미안하지 않아요, 엄마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