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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Nov 15. 2023

딸의 방문을 두려워하는 엄마

시누이는 효녀다. 그녀는 시댁에서 차로 두시 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지만, 한 달에 두 번씩은  부모님을 찾아뵙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통화를 하며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한국인들에게는 '그 정도가 무슨 효도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18세 이후 독립과 동시에 부모와 정서적으로 결별하는 이곳 문화를 고려해 볼 때 시누는 부모를 잘 돌보는 효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그런 딸의 방문을 어려워하신다.


시누가 딱히 어머님의 집을 평가하거나 청소 상태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시누의 얼굴에 비치는 불편한 기색을 단번에 눈치채기 때문에, 또, 그렇게 손님으로 방문하는 딸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세월이 벌써 30년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설명하기 힘든 텐션이 늘 자리한다.


호더스인 어머니와 결벽증인 딸. 특징을 나열해 놓고 보니 너무 상극이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다. 둘의 관계에서 늘 긴장하는 쪽은 어머니다. 실수를 하는 쪽이 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수라 함은 나쁜 의도가 전혀 없지만 상대를 짜증 나게 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인데,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집안 여기저기에서 과일을 드시남은 껍질이나 씨를 수습하지 않아 시누가 밟거나 거기에 앉거나 해서 그녀의 기분이 상하는 경우, 또는 시누가 어머니를 위해 선물로 사 온 예쁜 핸드백을 처음 들고나가셨다가 시누가 보는 앞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뭉텅 떨어뜨려 가방이 못쓰게 됐던 경우와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어른이기 때문에 나쁜 의도가 없는 타인의 실수를 용서해 준다. 심지어 미안해하는 상대를 위해 내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시누 역시 기분은 상하겠지만 매번 웃으며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고 그녀의 마음을 먼저 살핀다. 하지만 어머니의 긴장도는 계속해서 높아져간다. 그래서 또 실수가 잦아지는 이 악순환의 고리.


결벽증인 엄마와 OCD를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어머니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에 따라 비난과 처벌을 받는 환경에서 컸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의 긴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모든 물건들이 제 자리에 있어야 되는 타이트한 정신적 압박 속에서 '여기 있어야 되는 리모컨이 왜 안 보이지?'라는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인내심이 전혀 없는 아버지가 폭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이 채 안되었기 때문에, 머릿속의 초침이 빠르게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혹시 먼지를 털다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른데 놔둔 건 아닌가?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숨죽여 내 모든 행동을 곱씹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복싱게임이 녹화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가족 모두가 보는 앞에서 비디오테이프플레이어를 던져 박살 냈다. 30년도 지난 기억인데 그때 느꼈던 폭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아직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의 부모는, 보이지 않는 선반 위 먼지도 용납이 안 되는 지나치게 깨끗한 집에서 모든 물건을 반드시 제 자리에 놓아두며 살고 있다. 그래서 마치 살얼음판과도 같은 그들의 집에 가는 게 너무 불편하다. 우리 집에 그들이 오는 것 또한 반갑지 않다. 잘못을 집어내려는 매서운 눈빛과 내 기분을 한 순간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칼날 같은 비난의 말들을 장착하고 올 것이 뻔한 손님은 정말이지 초대하고 싶지 않다.

유물이 된 VCR RECORDER/PLAYER, 사진출처 ebay UK


시누가 온다고 하는 주말이면 모든 일상을 중단하고 청소 모드에 돌입하시는 어머니.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청결 상태는 시누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시댁에 처음 다녀와 충격을 받고 친구에게 '집이 쓰레기장이야'라고 했더니, 친구는 '네 눈에 쓰레기였겠지'라는 '쓰레기의 상대성' 이론을 제시했었다. 난생처음 호더스의 집을 보았지만, 거기서 나고 자란 내 남자친구가 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눈먼 사랑에 발동한 방어기제가 논리적 사고를 막았음에 틀림없다. 대신에 나는 호더스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살길을 찾아갔다. 다행히 청결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남편과 자식의 무의미한 물건들을 눈감아 줄 수 있는 나름의 균형적 태도를 획득했다.


시누와 시어머님 그 양 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의 중재적 관점은 그 둘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보이지 않아서 치울 수 없었던 (내 눈에) 쓰레기들이 정리되면 시누가 좀 더 편안해질 것이 확실하므로 어머님의 긴장 또한 낮아진다. 내가 어머님을 도와드리는 주말에 방문하는 시누의 표정은 한층 밝다. 눈에 띄는 잡동사니가 일시적으로 모두 사라진 집 안으로 들어서며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음에 감동하는 시누. 그런 딸을 보는 어머니의 표정 또한 만족스럽다.


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녀를 편안하게 대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어머님을 지켜본다. 딸의 방문이 두려운 건, 어쩌면 딸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도 크고 간절해서가 아닐는지. 가족이지만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더 잘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 따뜻하게 전해지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결벽증인 시누는 기쁜 마음으로 호더스인 부모를 만나러 온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전해져, 부모를 보러 는 모든 자식의 마음과 자식을 기다리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저 '행복과 기쁨'이면 좋겠다.


Llyn Ogwen, 11/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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