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생일인 아이를 위한 파티 옵션은 제한적이다. 여름에 생일인 아들 친구들의 홈파티, 피크닉파티, 축구파티등에 참석해 봤는데 날씨 변수가 있긴 했지만 그들의 파티는 대체로 아이 친구들의 부모들까지 참석해 성대하게 치러지곤 했다. 제일 스케일이 컸던 파티는 어른 아이 합해 백여 명이 모인 적도 있었다.
일 년에 단 하루. 의미를 두자면 끝도 없겠지만, 사랑하는 아이의 생일이니 아이가 원하는 파티를 꼭 열어주고 싶었다.
영국 아이들은 겨울에 어떤 파티를 할까, 검색해 보니 주로 주제를 정해(예: 디스코파티, 너프건파티, 마술파티 등) 실내에 모여 파티 호스트가 두 시간가량 파티를 진행하는 식이었다. 가격은 파티장소 대여비를 포함해 아이 한 명당 15파운드 정도였다. 아이에게 물으니, 레이저건 파티를 하고 싶다며 10월에 참석했던 알렉스의 생일파티를 언급한다. 이 동네 유일한 키즈카페에서 6시 정상영업이 끝나면 주말 저녁에만 장소를 통째로 빌려 생일인 아이에게 레이저건 파티를 열어줄 수 있다. 콜드뷔페(샌드위치, 과일, 도넛, 음료 무제한) 포함 일인당 16.50파운드이고, 최대 인원은 16명으로 제한이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기가 많은 파티라 두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
정확한 참석 인원은 RSVP를 받아보아야 알 수 있으므로 대략 15명으로 예약을 진행했다. 아이 편으로 총 16명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두 명을 제외한 14명이 초대에 응했고, 이후 부모들과 dietary requirments(알러지 관련 음식 제한 사항) 관련 대화가 오고 갔다. 아이들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고, 음식이 제공되는 파티니 알러지 더블체크는 필수다.
어디에나 그렇지만, 이곳 역시 이혼가정, 싱글맘(대디), 재혼가정, 조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한 가지 한국과 다른 점은, 그 사실에 대해 누구도 쉬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며, 다른 형태의 가족이 존재함을 어떠한 가치 판단 없이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문화 때문에 그렇다. 하다못해 학교에서 기본적인 호구조사를 할 때도 가족 구성원을 체크하는 항목이 일고여덟 가지는 된다. '부모와 아이들'이 당연한 가족 구성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프레야라는 아이의 엄마는, '(아들의 생일파티가 있는) 그 주는 프레야가 아빠를 만나는 주말이라 참석을 못한다'라고 연락했고, 그레이슨 역시 그 주는 아빠를 만나는 주말인데 엄마가 아이를 일찍 픽업해 와 파티에 참석하겠지만 조금 늦을 수도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아빠인 줄 알았던 사람이 새아빠이거나, 배다른 형제들이 있다거나 파트너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his(her) dad'와 'my patner(husband)'는 분명히 다르다. 그들은, 호칭을 분명히 함으로써 혼란과 불필요한 설명을 줄인다. 듣는 사람 역시, 사람을 알아가는 초기 단계에서 정보 습득 외에 다른 판단은 보류한다. 타인의 가정사에 대한 무관심과 존중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는 이곳에선 편견으로 아이들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다.
생일 당사자인 아들을 포함해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모두 6시 전까지 베뉴에 도착했다. 파티호스트의 우렁찬 함성 소리에 맞춰 레이저건 파티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자신의 레이저총과 전광판을 시시각각 확인하며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겨울이고 실내 난방이 거의 안 되는 곳이었지만, 반팔 티셔츠 차림의 아이들은 머리가 다 젖을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식사를 위해 모인 20분간의 짧은 브레이크, 막간을 이용해 아들은 자신에 대한 퀴즈(파티 날짜와 실제 생일이 달랐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나의 진짜 생일은?'라거나, '내가 태어난 곳은?' 등과 같은 사적 퀴즈들)를 낸 후 정답자에게 손수 준비한(용돈으로 구매해 직접 포장해 감)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생일 파티의 하이라이트, Happy Birthday 노래와 함께 신이 난 아들이 케이크의 초를 끄며 잔치는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의 부모가 픽업을 위해 하나둘 도착했다. 부모를 보자마자 너무 재밌었다고 재잘대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고 즐거워진다. 떠나는 아이들에게 구디백과 케이크백을 각각 하나씩 들려 보내고,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생일 파티에서 온 열정을 불사른 아들은 결국 감기몸살에 걸려 일주일을 앓았다. 파티 후 등교를 못 해 아이들을 통해 후일담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부모들로부터 받은 감사의 문자들로 일주일 내내 마음 한편이 따뜻했다. 아들의 친구들이 생일파티에 와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덩그러니 놓여 고군분투하며 적응하려 애썼을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그런 아들을 받아들여주고 파티에까지 와서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준 친구들이 고맙기도 했다.
이곳에 온 지 어느덧 일 년. 이제는 아무도 내게 'How are you settling in?(잘 적응하고 있어?)'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나의 적응보다 더 염려되었던 건 아이의 학교 생활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나 걱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저 아이가 덜 힘들기 바라는 평범한 부모로서의 조바심이었다. '아이의 생일 파티'라는 큰 일을 잘 치르고 나니 비로소 아이와 우리가 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제야 나는,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한 의례적 답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I am feeling quite at home now, thank you(정말 잘 적응했어요, 고맙습니다)."